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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시종결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사태

1981-02 — 1993-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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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기 미금의 합성섬유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이황화탄소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중독돼 8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장애 판정을 받은 한국 대표적 직업병 사태다.

2. 전개 과정[편집]

7개 기록 · 1981-02 ~ 1993-06-08

19811
  1. 첫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 확인

    1981년 2월 원진레이온 방사과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홍원표씨가 이황화탄소(CS2) 중독으로 인한 첫 직업병 환자로 확인됐다. 원진레이온은 인조견사(레이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황화탄소를 사용했는데, 낡은 설비에서 발생한 유독가스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장기간 이 유독물질에 노출되며 신경계·혈관계 손상을 입었다. 마비, 언어장애, 정신이상 등 심각한 후유증이 잇따랐다. 그러나 초기에는 직업병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19821
  1. 중대재해 속 무재해 기록증 발급 논란

    1982년에는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작업장에서 이황화탄소가 허용기준치의 2.6배, 유화수소가 1.3배 검출된 상황에서 원진레이온에 2만 5천 시간 무재해 기록증을 발급해 논란이 됐다. 회사와 감독 당국은 유해 작업환경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자 건강보다 생산성을 앞세운 당시 산업 현장의 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후에도 중독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다.

19871
  1. 중증 마비 노동자 강제 퇴사

    1987년 1월에는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중증 마비 상태에 이른 원진레이온 노동자 11명이 회사로부터 사실상 강제로 퇴사당했다. 회사는 병든 노동자를 산업재해로 보상하기보다 내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직업병을 앓는 노동자들은 치료와 보상은커녕 일자리마저 잃는 이중고에 처했다. 이런 부당한 처우는 피해자와 노동계의 분노를 키웠다. 문제 해결 없이 은폐하려는 태도가 사태를 더욱 키운 셈이다.

19882
  1. 한겨레 보도로 사회 문제화

    1988년 7월 22일 한겨레신문이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심각한 이황화탄소 중독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사태가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번졌다. 그동안 개별 노동자의 불운으로 치부되던 피해가 구조적 직업병 문제로 재조명됐다. 언론 보도를 계기로 노동계와 시민사회가 진상 규명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원진레이온은 한국 직업병 문제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은폐돼 있던 산업재해가 공론장으로 나온 전환점이었다.

  2. 직업병 판정위원회 구성과 초기 합의

    1988년 9월 14일 회사 측과 피해자 측이 각각 추천한 인사로 6인의 직업병 판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 장해 등급에 따라 1천만 원에서 1억 원까지 보상하는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황화탄소 중독이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만성 질환이라는 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짧은 요양 뒤 병세가 악화됐지만 재요양을 거부당했다. 불완전한 초기 합의가 이후 긴 투쟁의 불씨가 됐다. 직업병 인정 기준 자체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19911
  1. 김봉환 장례투쟁과 인정 기준 개정

    1991년에는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숨진 노동자 김봉환씨의 유해를 두고 137일에 걸친 장례투쟁이 벌어졌다. 같은 해 퇴직 노동자 권경용씨가 이황화탄소 중독 후유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해자들의 절박한 상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이들의 죽음과 투쟁은 국회 진상조사로 이어졌다. 결국 1992년 정부는 직업병 인정 기준을 '명백한 인과관계'에서 '상당한 인과관계'로 완화해 개정했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싸움이 산재 인정 제도 전반을 바꾼 것이다.

19931
  1. 원진레이온 폐업과 녹색병원의 탄생

    1993년 6월 8일 원진레이온은 결국 폐업했다. 최종적으로 이 사태로 8명이 숨지고 637명이 장애 판정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폐업 뒤 1993년 원진직업병관리재단이 설립됐고, 1999년 경기도 구리에 원진 녹색병원이 문을 열어 이황화탄소 중독 노동자들의 치료를 이어갔다. 이어 서울에 녹색병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세워져 산재·직업병 연구의 거점이 됐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한국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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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사태, 어떤 사건인가요?
경기 미금의 합성섬유 공장 원진레이온에서 이황화탄소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중독돼 8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장애 판정을 받은 한국 대표적 직업병 사태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사태, 언제 일어났나요?
1981-02부터 1993-06-08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사태,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3-06-08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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