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 사임
1972-06-17 — 1974-09-08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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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2년 6월 닉슨 재선위원회 관련자들이 워터게이트 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했다 체포된 뒤, 은폐 시도와 백악관 녹음테이프 공방 끝에 1974년 8월 닉슨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정치 스캔들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72-06-17 ~ 1974-09-08
워터게이트 빌딩 민주당 전국위 사무실 침입범 5명 체포
1972년 6월 17일 새벽 워싱턴 D.C. 워터게이트 빌딩 단지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서 침입자 5명이 체포됐다. 경비원 프랭크 윌스가 문 잠금장치에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 계기였다. 체포된 이들은 버질리오 곤살레스, 버나드 바커, 제임스 맥코드, 유헤니오 마르티네스, 프랭크 스터지스로, 쿠바 출신 인사 다수와 전직 CIA 요원 맥코드가 포함돼 있었다. 현장과 이들이 빌린 호텔방에서는 침입 도구와 카메라, 정교한 도청 장비가 나왔다. 처음에는 단순 침입 사건처럼 보였지만 이후 닉슨 재선위원회와 백악관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드러나며 대통령 사임으로 이어질 정치 스캔들의 출발점이 됐다.
대배심, 헌트·리디 포함 7명 기소
1972년 9월 15일 연방 대배심은 현장에서 체포된 5명에 더해 E. 하워드 헌트와 G. 고든 리디까지 7명을 공모, 절도, 연방 도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헌트와 리디는 닉슨 재선위원회와 백악관 주변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어서 사건이 단순 절도가 아니라는 의심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 기자는 재선위원회의 비밀자금이 침입 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취재를 이어갔다. 그러나 선거를 두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 백악관은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했고 닉슨은 11월 대선에서 압승했다. 이 시기의 기소는 사건이 법적으로 확대되는 첫 단계였지만 정치적 파장은 선거 뒤에야 본격화됐다.
버터필드, 백악관 녹음 시스템의 존재 공개
1973년 7월 16일 상원 워터게이트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백악관 보좌관 알렉산더 버터필드가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증언했다. 앞서 7월 13일 위원회 직원들의 비공개 면담에서 존 딘 전 법률고문의 증언을 확인하던 중 버터필드가 사실을 인정한 것이 계기였다. 이 증언으로 닉슨과 딘 가운데 누구의 말이 맞는지를 녹음테이프로 가릴 수 있게 됐다. 이후 특별검사와 의회는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고 닉슨은 행정특권을 내세워 거부하면서 헌정 대립으로 번졌다. 이 증언은 사건의 승부를 가른 결정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토요일 밤의 학살, 콕스 특별검사 해임
1973년 10월 20일 토요일 닉슨은 테이프 제출 소환장을 철회하지 않는 아치볼드 콕스 특별검사를 해임하라고 엘리엇 리처드슨 법무장관에게 지시했다. 리처드슨은 이를 거부하고 즉시 사임했고, 윌리엄 러켈사우스 법무차관도 해임을 거부하며 사임했다. 결국 서열 3위인 로버트 보크 송무차관이 콕스를 해임했다. 하룻밤에 이뤄진 이 조치에 시민들의 항의 전보가 쏟아지고 여당인 공화당 일부까지 비판에 나서면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하원은 곧 탄핵 조사 절차에 착수했고 이 사건은 닉슨 몰락의 전환점이 됐다.
연방대법원 8대0, 닉슨에 테이프 제출 명령
1974년 7월 24일 연방대법원은 합중국 대 닉슨 사건에서 8대0 만장일치로 닉슨이 64개의 녹음테이프를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워런 버거 대법원장이 쓴 의견은 대통령의 행정특권이 형사재판에서 명백히 관련된 증거를 숨기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관은 닉슨 행정부 근무 경력 때문에 심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7월 8일 구두변론 이후 불과 16일 만에 나온 판결로, 닉슨은 더 이상 법정에서 테이프를 감출 수 없게 됐다. 이 판결은 대통령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확인한 판례로 남았다.
'스모킹 건' 테이프 공개, 의회 지지 붕괴
대법원 판결 후 백악관이 제출한 테이프 중에는 침입 6일 뒤인 1972년 6월 23일 닉슨과 H.R. 홀더먼이 FBI 수사를 막을 방법을 논의한 대화가 있었다. 1974년 8월 5일 이 녹음 전사본이 공개되면서 닉슨이 사건 초기부터 은폐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이른바 스모킹 건 테이프로 불렸다. 앞서 7월 말 하원 법사위원회는 사법방해, 권력남용, 의회모독을 사유로 탄핵 조항을 잇달아 가결한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닉슨을 지지하던 공화당 의원들도 등을 돌렸고 상원의 유죄 표결이 확실시되는 상황이 됐다. 이 공개는 사임 결정을 사실상 불가피하게 만든 마지막 압박이었다.
닉슨, 미국 역사상 첫 대통령 사임 발표
1974년 8월 8일 저녁 닉슨은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다음 날 정오부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하원에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었고 의회와 여론의 압력이 한계에 이른 상태였다. 그는 의회 내 정치적 기반이 사라졌다는 점을 사임 이유로 들었지만 불법행위를 직접 인정하지는 않았다. 8월 9일 사임이 발효돼 제럴드 포드 부통령이 제38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 사임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었고 워터게이트는 정치권력 감시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포드 대통령, 닉슨에 전면 사면
1974년 9월 8일 포드 대통령은 포고문 4311호로 닉슨이 대통령 재임 중 저질렀거나 저질렀을 수 있는 연방 범죄 전체에 대해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사면을 선언했다. 그는 길고 분열적인 재판이 나라를 더 갈라놓을 것이라며 국가 치유를 이유로 들었다. 닉슨은 기소 가능성에서 벗어났지만 사면 시점과 사전 거래설을 둘러싸고 비판이 거셌다. 사면 직후 포드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고 1976년 대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이 사면으로 워터게이트의 형사 책임 추궁은 닉슨 본인에 대해서는 종결됐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 사임, 어떤 사건인가요?
- 1972년 6월 닉슨 재선위원회 관련자들이 워터게이트 빌딩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했다 체포된 뒤, 은폐 시도와 백악관 녹음테이프 공방 끝에 1974년 8월 닉슨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 정치 스캔들이다.
-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 사임, 언제 일어났나요?
- 1972-06-17부터 1974-09-08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 사임,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74-09-08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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