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북한의 미 해군 정보수집함 나포와 승조원 11개월 억류
1968-01-23 — 1969-05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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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68년 1월 23일 북한이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해 승조원 1명이 숨지고 82명이 11개월간 억류된 사건으로, 청와대 습격 직후 한반도 위기를 높였고 같은 해 12월 미국이 사과 문서에 서명한 뒤 승조원이 석방되었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68-01-21 ~ 1969-05
청와대 습격 시도 사건으로 한반도 긴장 고조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 부대 요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서울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저지되었다. 한국군과 경찰의 교전으로 침투조 대부분이 사살되었고 남측 민간인과 군경도 희생되었다. 사건 이틀 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면서 한반도는 전쟁 직전의 위기 상황에 놓였다. 두 사건의 직접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해석이 갈린다.
푸에블로호,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 해군에 나포
1968년 1월 23일 로이드 부처 중령이 지휘하는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원산 앞 동해에서 북한 초계정과 MiG 전투기의 위협을 받고 나포되었다. 미국은 나포 당시 선박이 영해 밖 국제 해역에 있었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은 영해를 침범했다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승조원 두에인 호지스가 사망했고 82명이 포로가 되었다. 승조원 일부는 부상을 입었다. 선박에는 암호장비와 기밀문서가 실려 있었으며 일부는 파기하지 못해 북한에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존슨 대통령, 예비군 소집과 해군 전력 전개
린든 존슨 대통령은 군사 대응 여부를 놓고 고민하다가 1월 하반기 약 1만 5천 명의 예비군을 소집하고 엔터프라이즈 항모전단을 동해로 보냈다. 소련과 북한을 사이에 둔 확전 위험이 컸고,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 군사력이 묶여 있었다. 존슨 행정부는 결국 군사 보복 대신 외교 협상으로 승조원을 구출하는 길을 택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협상 중심 대응에 불만을 드러냈다.
억류 중 부처 함장 강제 자백과 선전용 사진, 승조원 '행운 사인' 논란
억류 기간 부처 함장은 가혹 행위 위협 속에서 영해 침범과 간첩 행위를 인정하는 자백서에 서명했다. 승조원들은 억류 기간 북한이 공개한 선전 사진에서 손가락 욕설 제스처를 하며 이를 '하와이식 행운의 사인'이라고 둘러댔다. 북한이 뒤늦게 이를 알아채자 승조원들은 한층 가혹한 대우를 받았다. 이 일화는 미 해군 내 SERE 훈련과 포로 대응 지침 논의에 자주 인용된다.
판문점에서 미·북 비밀 협상 개시
푸에블로호 승조원 송환을 위해 1968년 2월 2일부터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 대표 사이 비공개 협상이 시작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영해 침범과 간첩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협상은 수십 차례 거듭되는 지루한 줄다리기가 되었고 승조원은 그동안 북한에 억류되었다. 억류 중인 승조원들은 구타와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훗날 증언했다.
미국 사과문 서명 직전 부인 성명, 승조원 판문점 귀환
1968년 12월 22일 미국 대표 길버트 우드워드 소장은 판문점에서 북한이 작성한 영해 침범 인정과 사과 문서에 서명하면서, 서명이 포로를 구하기 위한 것일 뿐이며 문서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는 사전 성명을 발표했다. 이튿날인 12월 23일 승조원 82명과 사망자 유해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걸어 남측으로 넘어왔다. 억류 기간은 약 11개월(335일)이었다. 미국은 이후 이 서명 문서를 공식적으로 철회했다.
해군 조사법정, 부처 함장 군법회의 회부 권고
1969년 초 미 해군은 샌디에이고 인근에서 조사법정을 열고 나포 경위와 기밀 관리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법정은 부처 함장과 부함장 에드워드 머피 중위 등을 군법회의에 회부하라고 권고했다. 반면 여론은 포로 생활에서 고초를 겪은 승조원을 처벌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맞섰다. 이 논의는 지휘관 책임과 정보함 운용 정책에 대한 비판을 불러왔다.
해군장관, 부처 함장 등 징계 철회
1969년 5월 해군장관 존 채피는 부처 함장과 승조원들이 충분한 고통을 겪었다며 군법회의 회부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처는 2004년 사망할 때까지 군에서 명예 회복을 요구했다. 푸에블로호는 현재도 미 해군 소속 함정으로 등록돼 있으나 북한이 평양 대동강변에 전시하고 있다. 이 사건은 한미동맹과 북미 관계의 오랜 갈등 지점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북한의 미 해군 정보수집함 나포와 승조원 11개월 억류, 어떤 사건인가요?
- 1968년 1월 23일 북한이 원산 앞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나포해 승조원 1명이 숨지고 82명이 11개월간 억류된 사건으로, 청와대 습격 직후 한반도 위기를 높였고 같은 해 12월 미국이 사과 문서에 서명한 뒤 승조원이 석방되었다.
-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북한의 미 해군 정보수집함 나포와 승조원 11개월 억류, 언제 일어났나요?
- 1968-01-23부터 1969-0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북한의 미 해군 정보수집함 나포와 승조원 11개월 억류,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69-0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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