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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진행 중

바르셸 사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의 선거 공작 폭로와 제네바 호텔 변사(1987)

1987-09-13 — 진행 중

진행 중 ·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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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7년 9월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 우베 바르셸이 SPD 후보 엥홀름을 감시·음해하도록 지시했다는 측근 라이너 파이퍼의 폭로가 슈피겔에 실려 사임했고, 10월 제네바 호텔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자살·타살 논란이 이어진 독일 정치 스캔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87-05-31 ~ 2011-06-12

19876건
  1. 바르셸이 탑승한 항공기가 뤼벡 공항 접근 중 추락함

    1987년 5월 31일 우베 바르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가 탄 소형 전세기가 뤼벡 공항 착륙을 앞두고 추락했다. 이 사고로 조종사 엘리자베트 프리스케와 미하엘 하이제가 숨졌고, 경호원도 부상 후 사망했다. 바르셸은 중상을 입고 살아남았으며 이후 몇 달간 진통제를 복용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고는 훗날 그의 사망 경위를 둘러싼 논쟁에서 약물 복용 배경으로 자주 거론되었다. 사고 자체는 정치 스캔들과 무관하지만 사건 연대기의 출발점으로 기록된다.

  2. 슈피겔, 파이퍼의 폭로로 바르셸의 엥홀름 음해 공작 보도

    1987년 9월 13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바르셸 주총리의 언론 담당 보좌역이던 라이너 파이퍼의 증언을 실었다. 파이퍼는 바르셸이 SPD 총리 후보 비에른 엥홀름을 감시하고 도청 장치를 설치하도록 지시했으며, 탈세 의혹을 퍼뜨리는 음해 캠페인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보도가 나온 시점은 주 의회 선거를 하루 앞둔 때여서 파장이 컸다. 이 폭로는 이후 이른바 바르셸 사건 혹은 파이퍼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바르셸 측은 즉각 혐의를 부인했다.

  3. 주 의회 선거에서 CDU가 과반을 잃음

    폭로 보도 바로 다음 날인 1987년 9월 14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바르셸의 CDU는 이전 선거에서 지켰던 단독 과반 의석을 잃었고, 선거 결과는 정권 구도를 확정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양상을 보였다. 선거 직전 터진 스캔들이 표심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둘러싸고 이후에도 해석이 갈렸다. 바르셸은 총리직을 이어가려 했으나 정치적 입지는 급속히 약해졌다. 이 선거는 사건의 정치적 후폭풍이 시작된 분기점이었다.

  4. 바르셸, 기자회견에서 '명예를 걸고' 혐의를 부인함

    1987년 9월 18일 바르셸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파이퍼의 주장과 같은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명예를 걸고 결백을 맹세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 '명예의 약속(Ehrenwort)' 발언은 이후 독일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부인 장면 중 하나로 남았다. 그러나 이후 조사 과정에서 파이퍼의 진술을 뒷받침하는 정황이 나오면서 이 발언은 거짓 맹세였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 회견 이후에도 사퇴 압력은 오히려 커졌고 연정 파트너 FDP도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주 의회 조사위원회 구성 요구가 이어졌다.

  5. 바르셸, 주총리직 사임

    1987년 10월 2일 바르셸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사임은 파이퍼 폭로 보도가 나온 지 약 3주 만에 이루어졌으며, 그의 정치 경력은 사실상 막을 내렸다. 후임으로는 헨닝 슈바르츠가 임시 총리를 맡았다. 바르셸은 사임 후에도 공식적으로는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유지했다. 이 사임은 사망하기 불과 9일 전의 일이었다.

  6. 제네바 보리바주 호텔 욕실에서 바르셸이 숨진 채 발견됨

    1987년 10월 11일 바르셸은 스위스 제네바의 호텔 보리바주 객실 욕조에서 옷을 입은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는 며칠 전 한 정보 제공자를 만나기 위해 제네바에 왔다고 알려져 있다. 부검에서는 진정제와 바르비투르산계 약물 등 여덟 종의 약물이 검출되었다. 제네바 검찰은 그의 죽음을 자살로 판단했지만, 유족은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고 타살 가능성을 계속 제기했다. 이후 수십 년간 정보기관 개입설 등 다양한 음모론이 나왔으나 확정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19881건
  1. 주 의회 재선거에서 SPD가 압승, 엥홀름이 주총리에 오름

    스캔들 여파로 치러진 1988년 5월 8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재선거에서 SPD가 단독 과반을 차지하며 압승했다. 음해 공작의 표적이었던 비에른 엥홀름이 이어 주총리에 취임했다. 이는 CDU가 오랫동안 장악해 온 주 정부의 정권 교체였으며, 스캔들이 선거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엥홀름은 이후 SPD 중앙 정치 무대에서 영향력을 키워 당 대표 자리에까지 올랐다. 한편 주 의회 조사위원회는 사건의 경위를 계속 조사했다.

19931건
  1. 엥홀름, 파이퍼 지원금 관련 거짓 증언 시인하며 모든 직 사퇴

    1993년 5월 3일 엥홀름은 SPD 당대표와 총리 후보직,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조사위원회에서 파이퍼에게 자금이 건네진 일을 일찍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실제로는 이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 사건은 '서랍 사건(Schubladenaffäre)'으로 불리며 바르셸 사건의 후속 스캔들이 되었다. 피해자로 여겨졌던 인물이 거짓 증언 문제로 몰락한 것은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엥홀름은 이후 정치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20111건
  1. 뤼벡 검찰, DNA 분석 등 신기술로 사건 재조사 발표

    2011년 6월 12일 뤼벡 검찰은 바르셸 사망 사건을 DNA 분석 등 보다 정교한 기법으로 다시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망 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으로, 유족과 일부 언론이 제기해 온 타살설에 대한 재검토 성격을 지녔다. 이 재조사는 새로 확보 가능한 증거물의 과학적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확정적인 제3자 개입 증거가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며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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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바르셸 사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의 선거 공작 폭로와 제네바 호텔 변사(1987), 어떤 사건인가요?
1987년 9월 서독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 우베 바르셸이 SPD 후보 엥홀름을 감시·음해하도록 지시했다는 측근 라이너 파이퍼의 폭로가 슈피겔에 실려 사임했고, 10월 제네바 호텔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되어 자살·타살 논란이 이어진 독일 정치 스캔들.
바르셸 사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의 선거 공작 폭로와 제네바 호텔 변사(1987), 언제 일어났나요?
1987-09-13부터 현재(진행 중)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바르셸 사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총리의 선거 공작 폭로와 제네바 호텔 변사(1987),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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