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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시종결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

1991-10-19 — 1997-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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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10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회에 앙심을 품은 20대 남성이 훔친 차로 여의도광장 인파 속을 질주해 어린이 2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친 무차별 살상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5개 기록 · 1991-10-19 ~ 1997-12-30

19913
  1. 주말 여의도광장, 인파 속 질주

    1991년 10월 19일 주말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21세 남성 김용제가 훔친 승용차를 몰고 시민들이 모인 광장 안으로 시속 70km가 넘는 속도로 돌진했다. 당시 여의도광장은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하는 시민들로 붐비는 대표적인 도심 휴식 공간이었다. 평화롭던 광장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차량은 인파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돌진하며 사람들을 들이받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례 없는 무차별 살상이었다.

  2. 어린이 2명 사망, 21명 부상

    이 사건으로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며 놀던 윤신재(당시 5세)군과 지현일(당시 12세)군이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또한 21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어린 생명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이유 없이 희생되면서 사회적 충격이 극에 달했다. 부상자 중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노약자와 가족 단위 시민이 다수 포함됐다. 무차별 범죄의 잔혹성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3. 체포된 범인, 사회 복수 동기 진술

    현장에서 붙잡힌 김용제는 경찰 조사에서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일하는 직장마다 쫓겨나 사회가 자신을 무시하고 냉대하는 것 같아 복수하고 죽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는 약시 때문에 중국집 배달원, 나이트클럽 웨이터, 공장 직공 등으로 일하다 번번이 해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의 좌절과 분노가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살상으로 표출된 것이다. 범행 동기와 정신 상태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의 초기 대표 사례로 회자됐다.

19921
  1. 대법원 사형 확정

    김용제는 1992년 6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최종 확정됐다. 무고한 어린이 등을 무차별로 살해한 범행의 잔혹성과 사회적 파장이 양형에 반영됐다. 재판 과정에서는 범행의 계획성과 책임능력 여부가 쟁점이 됐다. 사건은 도심 다중이용 공간의 안전과 무차별 범죄 대응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여의도광장의 개방적 구조에 대한 안전 대책 논의도 촉발됐다.

19971
  1. 사형 집행, 남은 사회적 물음

    김용제는 사형 확정 5년 6개월 뒤인 1997년 12월 30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무차별 범죄와 사회적 소외, 그리고 사형제 존폐 논쟁을 다룰 때 반복적으로 거론돼 왔다. 개인의 좌절이 극단적 폭력으로 번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도심 광장 등 개방 공간의 차량 진입 통제 등 물리적 안전 대책도 강화됐다. 여의도광장 참사는 한국 범죄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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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1991년 10월 시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사회에 앙심을 품은 20대 남성이 훔친 차로 여의도광장 인파 속을 질주해 어린이 2명이 숨지고 21명이 다친 무차별 살상 사건이다.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1991-10-19부터 1997-12-30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여의도광장 차량 질주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7-12-30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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