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1982-05-04 — 198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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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2년 사채시장 큰손 장영자와 전 중앙정보부 차장 이철희 부부가 자금난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몇 배의 어음을 받아 유통시키며 7000억원대 어음을 사취한, 당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82-05-04 ~ 1983-06
장영자·이철희 부부 사기 혐의 구속
1982년 5월 4일 검찰은 사채업자 장영자와 남편이자 전 중앙정보부 차장 이철희를 거액 어음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자금난에 몰린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대여액의 최대 9배에 이르는 견질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서 할인·유통시키는 수법을 썼다. 발행된 어음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기업과 금융권 전체를 흔들었다. 부부가 권력 실세와 연결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파문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사건은 곧 전두환 정권 초기 최대 권력형 비리로 비화했다.
7000억원대 어음 규모와 기업 부도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부가 사취·유통시킨 어음 규모가 7000억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에 맞먹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건국 이래 최대 금융 사기로 기록됐다. 주요 피해 기업인 공영토건과 일신제강 등이 잇달아 부도 위기에 몰렸다. 어음 연쇄 부도 우려로 사채시장과 금융권이 대혼란에 빠졌다. 실물경제에 미친 충격이 사건의 파장을 더욱 키웠다.
대통령 처삼촌 이규광 연루 구속
검찰 수사는 장영자의 형부이자 전두환 대통령 부인 이순자의 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에게로 향했다. 이규광이 부부의 자금 동원과 권력 배경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그도 구속됐다. 권력 핵심부와의 연결 고리가 드러나자 사건은 단순 금융 사기를 넘어선 권력형 비리로 규정됐다. 청와대와 집권 세력의 도덕성에 큰 타격이 가해졌다. 여론은 정권 실세 비호 의혹에 들끓었다.
사건 여파로 개각 단행
사건의 정치적 파장이 커지자 전두환 정부는 5월 24일 대규모 개각을 단행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경제부처 수장들이 교체되며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 수뇌부도 인책 대상에 올랐다. 정권 초기 도덕성을 앞세웠던 신군부에게 이 사건은 정치적 위기였다. 개각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은행장 등 금융권 인사 무더기 구속
거액 어음이 아무 견제 없이 유통될 수 있었던 배경에 금융권의 유착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검찰은 조흥은행장 등 은행 고위 인사들을 특혜 대출과 어음 보증 관련 혐의로 구속했다. 대기업 자금 담당자들도 줄줄이 조사를 받았다. 금융 감독의 허점과 관치금융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 사건은 금융 실명제 도입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실명제 도입 방침 발표
정부는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7월 초 금융실명제 실시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차명·가명 거래가 거액 사채 사기와 비자금의 온상이 됐다는 반성에서 나온 조치였다. 그러나 재계의 강한 반발과 경제 충격 우려로 전면 실시는 연기됐다. 실명제는 이후 10여 년이 지난 1993년에야 김영삼 정부에서 전격 시행됐다. 장영자 사건은 한국 금융 투명성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
1심 재판과 중형 선고
1983년 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장영자와 이철희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대형 금융 질서 교란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장영자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사채시장을 좌지우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자들도 각각 실형과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규광 등 권력 연루자에 대한 처벌은 상대적으로 가볍다는 비판이 일었다.
장영자 징역 15년 확정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장영자에게는 징역 15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이철희 역시 실형을 확정받았다. 이 사건은 권력형 금융 비리의 대명사로 기록됐으며 '큰손 장영자'라는 이름은 이후에도 대형 사기 사건의 상징으로 회자됐다. 장영자는 출소 후에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또다시 대형 어음 사기로 여러 차례 처벌받았다. 1982년 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도덕성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 1982년 사채시장 큰손 장영자와 전 중앙정보부 차장 이철희 부부가 자금난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그 몇 배의 어음을 받아 유통시키며 7000억원대 어음을 사취한, 당시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 사기 사건이다.
-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 1982-05-04부터 1983-0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83-0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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