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샤드 메흐타 증권 스캔들, 1992년 인도 은행 자금 유용과 증시 폭락
1991 — 2001-12-31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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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빅 불'로 불린 인도 증권 중개인 하샤드 메흐타가 은행 간 레디포워드 거래와 위조 은행영수증을 이용해 은행 자금 수천억 루피를 주식시장으로 빼돌린 사실이 1992년 4월 언론 보도로 드러나 센섹스가 급락했고, 이 사태는 인도 증권 감독 체계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91 ~ 2001-12-31
경제 개방기, 메흐타의 은행 간 거래 확대
1991년 인도는 외환위기 속에서 경제 자유화에 착수했고 증시에는 대규모 자금이 몰렸다. 증권 중개인 하샤드 메흐타는 은행들이 정부채권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중개자로 개입해 막대한 자금을 다룰 수 있었다. 그는 은행 간 단기 자금 거래인 레디포워드 거래를 이용해 자금을 장기간 굴렸다. 당시 은행이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메흐타는 이런 규제 틈을 활용해 은행 자금을 간접적으로 주식에 투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센섹스 급등과 주가 폭등 종목 부상
1991년 이후 센섹스는 1년여 사이 약 1000선에서 4500선 이상으로 치솟았다. 메흐타는 시멘트 회사 ACC 같은 종목을 집중 매수해 주가를 단기간에 수십 배로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ACC 주가는 200루피 수준에서 약 9000루피까지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그가 '빅 불'이라 불리며 숭배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은행 자금에 기반한 인위적 수요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수체타 달랄, 타임스오브인디아 칼럼으로 의혹 폭로
1992년 4월 23일 경제 기자 수체타 달랄은 타임스오브인디아 칼럼에서 은행 영수증 거래 구조의 이상을 폭로했다. 취재는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 내부 제보를 단서로 이뤄졌고, 메흐타의 은행 간 거래에서 증권 담보 없이 영수증이 발행된 정황이 지적되었다. 보도 직후 SBI가 약 500크로르(50억 루피) 규모의 부족분을 확인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 칼럼은 메흐타 스캔들의 시작점으로 평가된다. 달랄은 이후 금융 부정 보도로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SBI 부족분 확인과 증시 대폭락
1992년 4월 말 SBI가 메흐타에게 지급한 자금 규모와 증권 부족 사태가 드러나자 투자자들이 공포에 빠져 매도에 나섰다. 센섹스는 수일 사이 급락했고 이후 수개월간 하락세가 이어졌다. 일부 집계에서는 지수가 고점 대비 절반 가까이 떨어졌으며 시가총액이 크게 사라졌다. 메흐타가 매수한 주식들은 담보 가치가 급락해 은행들이 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약 4000크로르(400억 루피) 안팎의 은행권 손실이 추정되었다.
의회 합동조사위원회 구성과 규제 개혁 착수
1992년 8월 인도 의회는 증권 거래와 은행 관련 부정을 조사하기 위한 합동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인도증권거래위원회 SEBI는 법적 권한을 갖춘 기관으로 격상되었고 증권시장 감독이 강화되었다. 이후 전자 거래 중심의 증권거래소 설립 필요성이 부각돼 국립증권거래소 NSE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은행 간 레디포워드 거래 규제와 증권 인도 확인 절차도 개선됐다. 사태는 개인의 부정을 넘어 제도 개혁의 촉매로 작용했다.
메흐타, CBI에 체포
1992년 11월 9일 인도 중앙수사국 CBI는 메흐타를 금융 부정 혐의로 체포했다. 수사당국은 그가 은행 자금을 유용해 주식을 사들인 뒤 약 250크로르(25억 루피) 규모의 주식 처분 문제 등과 관련됐다고 밝혔다. 수십 건의 형사 사건과 민사 소송이 동시에 제기됐다. 메흐타는 자신이 규정 위반 여부를 알지 못했으며 은행들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체포는 한때 영웅시되던 투자자가 몰락했음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메흐타, 나라시마 라오 총리에게 1000만 루피 뇌물 제공 주장
1993년 6월 메흐타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당시 총리 P.V. 나라시마 라오에게 1크로르(1000만 루피)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총리실은 이를 부인했고 메흐타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이 폭로는 스캔들이 정치권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웠다. 야당은 총리 사임을 요구하며 의회에서 공방을 벌였다. 메흐타는 이후 여러 법정 공방에서 정치권 연루 의혹을 반복적으로 거론했다.
은행영수증 사건 유죄 판결
메흐타는 은행영수증 사건과 관련해 1999년 법원에서 유죄 판결과 징역 5년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는 수십 개에 달하는 형사 사건이 걸려 있었고 판결 시기는 사건마다 달랐다. 많은 사건은 판결이 나지 않은 채 수년째 계류되었다. 피해를 입은 은행과 투자자들의 손실 보전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도 사법 시스템의 지연 문제도 이 사건을 통해 지적되었다.
메흐타, 구금 중 심장마비로 사망
2001년 12월 31일 하샤드 메흐타는 구금 중 마하라슈트라주 타네의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47세였다. 사망으로 미결된 형사·민사 사건은 상속인과 관련 기관에 넘어갔고 일부는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그의 스캔들은 인도 증시와 은행 감독 체계를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2020년 드라마 '스캠 1992'가 제작되며 사건이 대중적으로 다시 조명되었다.
3. 같이 보기[편집]
- 이반 보스키·데니스 레빈 내부자거래 스캔들과 드렉셀 몰락 (1986~1990)— 주식·투자
- JP모건 '런던 고래' 파생상품 거래 손실 62억 달러와 상원 조사·9억 2천만 달러 합의— 주식·투자
- 미국 오렌지카운티 파산 사태, 재무관 시트론의 파생상품 투자 실패로 16억 달러 손실— 주식·투자
- 2008년 폭스바겐 숏스퀴즈, 포르쉐 인수 시도로 주가 5배 폭등과 헤지펀드 대규모 손실— 주식·투자
- 미국 선물중개사 페레그린 파이낸셜 그룹 2억 달러 고객자금 횡령과 와센도프 징역 50년— 주식·투자
- 브레이엑스 보르네오 부상(Busang) 금광 시료 조작 사기, 60억 캐나다달러 주식 붕괴— 주식·투자

자주 묻는 질문
- 하샤드 메흐타 증권 스캔들, 1992년 인도 은행 자금 유용과 증시 폭락, 어떤 사건인가요?
- '빅 불'로 불린 인도 증권 중개인 하샤드 메흐타가 은행 간 레디포워드 거래와 위조 은행영수증을 이용해 은행 자금 수천억 루피를 주식시장으로 빼돌린 사실이 1992년 4월 언론 보도로 드러나 센섹스가 급락했고, 이 사태는 인도 증권 감독 체계 개혁의 계기가 되었다.
- 하샤드 메흐타 증권 스캔들, 1992년 인도 은행 자금 유용과 증시 폭락, 언제 일어났나요?
- 1991부터 2001-12-31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하샤드 메흐타 증권 스캔들, 1992년 인도 은행 자금 유용과 증시 폭락,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1-12-31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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