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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도시종결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1974-11-03 — 197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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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4년 11월 3일 새벽 서울 청량리역 인근 복합상가 대왕코너 6층에서 조명 합선으로 불이 나 나이트클럽 등을 덮치며 88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친 대형 화재 참사로, 회전문과 무단 증축 등 총체적 안전 부실이 피해를 키웠다.

2. 전개 과정[편집]

5개 기록 · 1974-11-03 02:47 ~ 1974-11-10

  1. 6층 브라운호텔서 조명 합선으로 발화

    1974년 11월 3일 새벽 2시 47분께 서울 청량리역 인근의 복합상가 대왕코너 6층에 있던 브라운호텔 618호실 앞에서 조명 설비의 합선으로 불이 났다. 불길은 삽시간에 6층에 있던 타임나이트클럽(고고장)을 비롯한 유흥시설을 태우며 번졌다. 새벽 시간대라 상당수 이용객이 술에 취해 있거나 잠들어 있어 화재를 곧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불은 곧 위층인 7층으로도 옮겨붙으며 건물 상층부를 집어삼켰다. 도심 번화가의 복합상가에서 벌어진 대형 화재의 시작이었다.

  2. 회전문·출입 통제가 부른 대피 참사

    나이트클럽에서 유독 많은 사망자가 나온 데는 대피를 가로막은 구조적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출입구가 회전문 형태여서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어려웠고, 종업원들이 술값 계산을 이유로 출입문을 막아서면서 초기 대피가 지연됐다. 갑작스러운 불길과 짙은 연기 속에서 손님들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갇혔다.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치는 사람도 속출했다. 좁고 통제된 출입 구조가 참사의 규모를 키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3. 88명 사망·35명 부상

    이 화재로 88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새벽 시간 유흥시설에 몰려 있던 이용객들이 한꺼번에 참변을 당하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사망자 88명 가운데 2명은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가묘 형태로 안장되기도 했다. 도심 복합상가에서 벌어진 단일 화재로는 손꼽히는 인명 피해였다. 대왕코너 화재는 다중이용시설의 화재 안전 문제를 다시 한번 사회에 각인시켰다.

  4. 무단 증축·관리 부실 드러나

    사고 조사 과정에서 대왕코너 건물의 총체적 안전 부실이 속속 드러났다. 원래 5층으로 허가받은 건물을 무단으로 7층까지 올린 불법 증축 상태였고, 금지된 장소에 가스통을 두는 등 애초부터 관리가 엉망이었다. 화재에 대비한 소방 설비와 피난 대책도 사실상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유흥시설이 밀집한 복합상가였음에도 안전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불법과 부실이 겹친 건물 관리가 대형 참사를 예고하고 있었던 셈이다.

  5. 반복된 대왕코너 화재와 남은 교훈

    대왕코너는 이전에도 화재가 발생한 전력이 있던 건물이어서 참사의 충격은 더욱 컸다. 같은 상가에서 대형 화재가 되풀이됐다는 사실은 안전 관리가 근본적으로 방치돼 있었음을 보여줬다. 1970년대 서울에서는 대연각호텔·서울시민회관 화재에 이어 대왕코너 화재까지 대형 참사가 잇따랐다. 이들 사고는 급격히 늘어난 고층·복합 건물의 안전 규정과 소방 역량이 크게 뒤처져 있었음을 드러냈다. 대왕코너 화재는 도심 다중이용시설 안전의 중요성을 일깨운 비극으로 기록됐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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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어떤 사건인가요?
1974년 11월 3일 새벽 서울 청량리역 인근 복합상가 대왕코너 6층에서 조명 합선으로 불이 나 나이트클럽 등을 덮치며 88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친 대형 화재 참사로, 회전문과 무단 증축 등 총체적 안전 부실이 피해를 키웠다.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언제 일어났나요?
1974-11-03부터 1974-11-03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74-11-03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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