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묵시록 필리핀 제작 사태, 태풍·주연 교체·심장마비로 예산이 두 배 이상 불어난 코폴라의 악몽
1976-03-20 — 197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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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6년 3월 필리핀에서 촬영을 시작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 태풍 올가로 세트 대부분이 파괴되고 주연 교체와 마틴 쉰의 심장마비, 말론 브란도의 준비 부족 등으로 4개월 일정이 238일로 늘고 예산이 3천만 달러 이상으로 불어난 제작 위기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7개 기록 · 1976-03-01 ~ 1977-05-21
코폴라, 4개월 촬영 계획으로 마닐라 도착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조지아·플로리다·호주 등을 후보지로 살핀 끝에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지옥의 묵시록'을 필리핀에서 찍기로 했고 1976년 3월 1일 마닐라에 도착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가 약 1,550만 달러의 자금을 대고 초기 예산은 1,200만~1,400만 달러 안팎으로 추산됐으며 촬영은 4개월이면 끝날 것으로 계획됐다. 존 밀리어스의 시나리오는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베트남전으로 옮긴 것이었다. 필리핀 정부의 헬리콥터 지원도 계약에 포함돼 있었다.
필리핀 현지에서 촬영 시작
3월 20일 필리핀에서 본 촬영이 시작됐다. 제작진은 이바 등 필리핀 산악·해안 지역에 대규모 세트를 지었고 실제 군 헬리콥터와 대규모 인원을 동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초기부터 촬영 속도는 계획을 따라가지 못했다. 코폴라는 현장에서 대본을 계속 고치며 즉흥적으로 연출을 이어 갔고, 이는 일정과 비용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아내 엘리너 코폴라가 현장 일지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다.
하비 케이틀에서 마틴 쉰으로 주연 교체
촬영이 몇 주 진행된 뒤 코폴라는 윌러드 대위 역의 하비 케이틀이 작품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교체하기로 했고, 마틴 쉰이 4월 합류했다. 이미 촬영된 분량을 다시 찍어야 해 일정이 늦어졌고 비용도 늘었다. 쉰은 이후 8월 즉흥 호텔 장면 촬영 때 술에 취한 채 연기하다 거울을 깨고 손을 다쳤다. 주연 교체는 제작 위기의 첫 신호로 꼽힌다.
태풍 올가가 세트를 휩쓸고 제작 중단
1976년 5월 하순 태풍 올가가 필리핀을 강타해 이바의 촬영 세트 상당수가 파괴됐다. 위키백과 등은 세트의 40~80%가 손상된 것으로 전하며 5월 26일 제작이 중단됐다. 플레이보이 모델이 등장하는 장면 촬영분이 사라지고 급여도 도난당하는 등 피해가 겹쳤고, 예산은 약 200만 달러 초과했다. 코폴라는 약 50만 달러의 보험금을 청구했고 제작진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이후 다시 모였다.
촬영 재개와 준비 안 된 말론 브란도
제작은 7월쯤 재개됐고 이후 합류한 말론 브란도는 체중이 크게 불어난 채 대본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난 것으로 전해진다. 코폴라는 커츠 대령 역을 어떻게 촬영할지 현장에서 다시 구상해야 했고, 브란도와의 즉흥적 대화로 장면을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결말 구성이 바뀌며 촬영은 더 길어졌다. 필리핀 정부의 헬리콥터도 반군 진압에 차출되는 일이 잦아 촬영 일정에 지장을 주었다.
마틴 쉰, 심장마비로 쓰러져
1977년 3월 5일 마틴 쉰이 촬영 중 심각한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졌고 생명이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쉰의 동생 조 에스테베스를 대역으로 써서 일부 장면을 이어 갔다. 쉰은 치료를 받은 뒤 4월 19일 현장에 복귀했다. 이 사건은 제작 위기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었고, 코폴라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와 건강 문제를 겪은 것으로 훗날 회고됐다.
238일 만에 촬영 종료, 제작비 3,150만 달러 이상
주 촬영은 1977년 5월 21일 끝났고, 4개월로 계획했던 일정은 238일로 늘어났다. 최종 제작비는 3,150만 달러를 넘어서 초기 추산의 두 배 이상이 됐다. 코폴라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는 등 재정 부담을 졌고 이후 2년 넘게 편집에 매달렸다. 영화는 1979년 칸 영화제에서 공개돼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제작 과정은 아내 엘리너의 기록을 토대로 한 1991년 다큐멘터리 '암흑의 핵심'으로 다시 조명됐다.
3. 같이 보기[편집]
- 천국의 문 제작 참사, 마이클 치미노의 예산 폭주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몰락— 영화·콘텐츠
- 무슬림의 순수 반이슬람 영화 파문, 2012년 중동·아시아 시위와 제작자 나쿨라 수감— 영화·콘텐츠
- 제임스 건 디즈니 해고 사태, 과거 트윗 재조명과 가디언즈 3 감독직 박탈·복귀— 영화·콘텐츠
- 우디 앨런 아동 성학대 의혹 재점화: 아마존 계약 파기 소송과 회고록 출간 취소 파문— 영화·콘텐츠
- 영화 '라스트 탱고 인 파리' 강간 장면 논란: 마리아 슈나이더 증언과 베르톨루치 발언 파문— 영화·콘텐츠
- 할리우드 텐 청문회와 할리우드 블랙리스트 사태 (1947~1960)— 영화·콘텐츠

자주 묻는 질문
- 지옥의 묵시록 필리핀 제작 사태, 태풍·주연 교체·심장마비로 예산이 두 배 이상 불어난 코폴라의 악몽, 어떤 사건인가요?
- 1976년 3월 필리핀에서 촬영을 시작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 태풍 올가로 세트 대부분이 파괴되고 주연 교체와 마틴 쉰의 심장마비, 말론 브란도의 준비 부족 등으로 4개월 일정이 238일로 늘고 예산이 3천만 달러 이상으로 불어난 제작 위기 사건이다.
- 지옥의 묵시록 필리핀 제작 사태, 태풍·주연 교체·심장마비로 예산이 두 배 이상 불어난 코폴라의 악몽, 언제 일어났나요?
- 1976-03-20부터 1977-05-21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지옥의 묵시록 필리핀 제작 사태, 태풍·주연 교체·심장마비로 예산이 두 배 이상 불어난 코폴라의 악몽,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77-05-21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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