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유혈 진압
2021-02-01 —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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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21년 2월 1일 미얀마군이 총선 부정을 주장하며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민간 정부 지도부를 구금하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와, 이에 저항한 시민불복종 운동을 군부가 유혈 진압하며 수천 명이 숨진 정치적 격변의 전개를 정리한 문서다.
2. 전개 과정[편집]
14개 기록 · 2020-11-08 ~ 2026-01-25
총선 압승과 부정선거 주장
2020년 11월 치러진 미얀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연맹(NLD)이 압승을 거두며 재집권 기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군부가 후원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대규모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결과에 불복했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부정선거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군부와 민간 정부 사이의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다. 새 의회 소집을 앞두고 양측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군부 쿠데타 발발과 지도부 구금
새 의회 소집일인 2월 1일 새벽,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미얀마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민간 정부 지도부를 전격 구금했다. 군부는 1년간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입법·행정·사법권을 장악했다. 수도 네피도와 최대 도시 양곤 등 주요 도시에 병력과 탱크가 배치됐다. 통신과 인터넷이 차단되고 방송이 군 통제 아래 놓였다. 부정선거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국제사회는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로 규정했다.
아웅산 수치 기소
군경은 아웅산 수치를 수출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쿠데타 당일 자택에서 불법 수입된 무전기가 발견됐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이후 군부는 부패·선거법 위반·국가기밀 누설 등 혐의를 잇달아 추가하며 수치를 장기간 재판에 넘겼다. 국제사회는 정치적 탄압으로 짜맞춘 혐의라고 비판했다. 수치는 이후 수십 년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구금 상태에 놓였다.
시민불복종 운동(CDM)과 대규모 거리 시위
쿠데타에 반발한 시민들이 양곤과 만달레이 등 전국에서 대규모 반군부 시위에 나섰다. 공무원·의료진·교사 등이 업무를 거부하는 시민불복종 운동(CDM)이 확산되며 행정이 마비됐다. 시민들은 냄비를 두드리고 세 손가락 경례로 저항의 뜻을 표시했다. 젊은 세대인 'Z세대'가 시위를 주도하며 국제 연대를 호소했다. 군부는 집회 금지와 야간 통행금지를 선포하며 시위 진압에 나섰다.
첫 총상 사망자 발생
네피도에서 반군부 시위에 참가한 20세 여성 먀 트웨 트웨 카잉이 경찰의 실탄에 머리를 맞고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는 열흘 뒤 숨져 쿠데타 이후 상징적인 첫 사망자로 기록됐다. 이 사건은 미얀마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고 시위는 더욱 격화됐다. 군경의 실탄 사격이 잦아지며 사상자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유엔과 서방 각국은 미얀마군의 무력 사용을 강하게 규탄했다.
'피의 토요일'…하루 100명 이상 사망
군의 날인 3월 27일, 미얀마 전역에서 군경이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하면서 하루에만 100명이 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어린이까지 희생되며 '피의 토요일'로 불린 이날은 쿠데타 이후 최악의 유혈 사태로 기록됐다. 같은 날 네피도에서는 군부가 대규모 열병식을 벌여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다. 미국·EU 등은 미얀마군 지도부에 대한 제재를 강화했다. 유혈 진압에도 시민 저항은 꺾이지 않았다.
국민통합정부(NUG) 출범과 무장 저항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주진영 인사들이 임시 정부 성격의 국민통합정부(NUG)를 구성해 군부에 맞섰다. NUG는 이후 시민방위군(PDF)을 조직해 무장 저항에 나섰고,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대했다. 미얀마 곳곳에서 군부와 저항세력 간 무력 충돌이 벌어지며 사실상 내전 양상으로 번졌다. 군부는 NUG와 PDF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했다. 정치적 위기가 장기 무장 분쟁으로 전환됐다.
쿠데타 2년…사망자 수천 명·비상사태 연장
쿠데타 발발 2년이 지나도록 미얀마 사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인권단체 집계로 군부 진압 과정에서 숨진 시민이 수천 명에 이르고 수만 명이 체포됐다. 군부는 예정된 총선을 미루고 국가비상사태를 거듭 연장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경제는 붕괴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이 이어졌다. 아세안(ASEAN)의 중재 노력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사태가 장기화됐다.
'1027 작전'…소수민족 무장단체 합동 대공세
쿠데타 발발 1000일에 즈음한 2023년 10월 27일, 아라칸군(AA)·미얀마민족민주주의동맹군(MNDAA)·타앙민족해방군(TNLA)으로 구성된 '형제동맹'이 중국 접경 샨주 북부에서 '1027 작전'으로 불리는 합동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무장단체들은 신생 시민방위군 병력까지 합세해 샨주와 카친주 요충지를 동시다발로 공격했고, 국경 무역로와 다수 군 기지를 빼앗았다. 군정은 쿠데타 이후 3년 만에 최대 위기라는 평가 속에 수세로 몰렸다. 이 공세를 계기로 내전의 전선이 전국으로 확대됐고 저항 세력이 처음으로 전략적 주도권을 잡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1027 작전의 성공으로 군정 종말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군정, 징집제 전격 시행…청년 엑소더스
미얀마 군정은 2024년 2월 10일 2010년 제정 후 사문화됐던 병역법을 전격 발효해 18
35세 남성과 1827세 여성에게 군 복무를 의무화했다. 징집 기피자는 3~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잇단 패전과 탈영으로 한때 20만 명이던 병력이 7만5000명 수준까지 줄어든 병력난이 배경으로 지목됐다. 발표 직후 징집 대상 청년들 사이에 공포가 확산하며 여권 발급소와 태국 등 인접국 대사관 앞에 장사진이 늘어서는 등 대규모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군정은 여성 징집을 일시 유예한다고 밝혔지만 강제 징집과 청년 출국 제한 조치가 이어지며 반발이 커졌다.
규모 7.7 대지진…내전 속 수천 명 사망
2025년 3월 28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 인근 사가잉 단층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해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이후 최악의 피해를 냈다. 사망자는 발생 초기 2000명을 넘어 3500명 이상으로 불어났고, 이후 집계에서 사망 5400여 명·부상 1만1000여 명·피해액 약 110억 달러로 추산됐다. 만달레이의 붕괴된 호텔 잔해에서만 시신 80구가 수습되는 등 건물 8000여 채가 무너졌다. 내전으로 구호 접근이 막힌 데다 군정이 재난 중에도 공습을 이어가 인도적 위기가 가중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악천후와 행정 붕괴로 복구는 수개월째 지연됐고 수많은 이재민이 임시 거처를 전전했다.
4년 6개월 만에 비상사태 해제…총선 준비
미얀마 군정은 2025년 7월 31일 쿠데타 직후 선포해 6개월 단위로 7차례 연장해 온 국가비상사태를 4년 6개월 만에 해제했다. 헌법상 비상사태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총선 실시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12월 말 총선 실시 방침을 공식화하며 권력 이양이 아닌 '선거를 통한 집권 연장' 수순에 들어갔다.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내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의 선거는 군부 지배를 정당화하는 요식행위라고 반발했다. 국제사회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불가능한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쿠데타 후 첫 총선 1차 투표 실시
미얀마 군정은 2025년 12월 28일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총선 투표를 시작했다. 내전으로 전국 동시 투표가 불가능해 330개 행정구역 중 102곳에서 먼저 1차 투표를 실시하고, 2026년 1월 11일 100곳, 1월 25일 63곳에서 순차 투표하는 초유의 분할 선거로 치러졌다.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이미 정당 등록 취소로 해산돼 참여 자체가 봉쇄됐다. 저항 세력이 장악한 상당수 지역에서는 투표가 아예 열리지 못했고, 민주진영은 선거 보이콧과 불복종을 호소했다. 국제사회는 5년 만의 총선이 군부의 집권 연장을 위한 '반쪽 선거'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반쪽 총선' 종료…친군부 USDP 압승
2026년 1월 25일 3차 투표를 끝으로 미얀마 총선이 마무리됐고, 군부 관리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친군부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1
2차 투표에서 상·하원 합산 233석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헌법상 군부에 자동 할당되는 166석을 더하면 399석으로 집권에 필요한 294석을 크게 웃돌아 군부의 제도적 집권 연장이 확정됐다. 군정이 발표한 12차 투표율은 52.13%와 55.95%로, 70%를 넘겼던 2015년·2020년 총선보다 20%포인트 가까이 급락했다. 톰 앤드루스 유엔 미얀마 인권 특별보고관은 군부가 정치적 대리인의 압승을 위해 선거를 조작했다고 비판했다. 민주진영과 무장 저항 세력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내전과 정치적 위기는 쿠데타 5년째에도 계속되고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유혈 진압, 어떤 사건인가요?
- 2021년 2월 1일 미얀마군이 총선 부정을 주장하며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민간 정부 지도부를 구금하고 권력을 장악한 쿠데타와, 이에 저항한 시민불복종 운동을 군부가 유혈 진압하며 수천 명이 숨진 정치적 격변의 전개를 정리한 문서다.
-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유혈 진압, 언제 일어났나요?
- 2021-02-01부터 현재(진행 중)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유혈 진압,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아직 진행 중인 사건입니다. 최종 갱신일은 2026-01-2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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