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 뇌물 스캔들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 체포
1976-02-04 — 1993-12-16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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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76년 2월 미 상원 처치 소위원회가 록히드가 항공기 판매를 위해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 거액의 뇌물을 뿌린 사실을 폭로했다. 일본에서는 7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체포됐고 1983년 유죄가 선고돼 전후 최대 정치 스캔들로 기록됐다.
2. 전개 과정[편집]
7개 기록 · 1976-02-04 ~ 1993-12-16
미 상원 처치 소위원회, 록히드의 일본 비밀자금 폭로
1976년 2월 4일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이 이끄는 다국적기업 소위원회는 록히드가 일본에서 항공기 판매를 위해 30억 엔이 넘는 비밀 자금을 쓴 사실을 공개했다. 소위원회는 미국 기업의 해외 뇌물 관행을 조사하던 중 록히드 내부 문서에서 이 자료를 확보했다. 비밀 지급 영수증에는 땅콩이라는 암호가 쓰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폭로는 곧바로 일본 정계에 충격을 주었고 도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배경이 됐다. 같은 조사에서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도 비슷한 뇌물 정황이 드러났다.
코치안 록히드 부회장 증언, 마루베니 통한 뇌물 경로 공개
2월 6일 소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록히드 부회장 칼 코치안은 L-1011 트라이스타 판매와 관련해 일본 인사들에게 돈을 건넨 사실을 시인했다. 일본 총판 마루베니를 통해 약 2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6억 엔 가까운 돈이 전달됐다는 내용이었다. 우익 거물 고다마 요시오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고 사업가 오사노 겐지도 연루된 것으로 거론됐다. 증언으로 이 돈이 전일본공수의 트라이스타 도입에 쓰였다는 정황이 구체화됐다. 일본 국회와 검찰은 곧바로 진상 규명에 나섰다.
록히드 뇌물, 네덜란드·이탈리아 등으로 확산
록히드 조사는 일본에 그치지 않고 여러 나라로 번졌다. 네덜란드에서는 베른하르트 공이 F-104 전투기 선정과 관련해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그는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탈리아에서도 항공기 구매 거래와 관련한 수백만 달러 규모의 뇌물이 드러나 정치권 파문이 일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 조사에서는 약 400개 미국 기업이 해외 공직자에게 3억 달러 규모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시인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기업 해외부패 규제 논의를 촉발했다.
도쿄지검 특수부,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 체포
1976년 7월 27일 도쿄지검 특수부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외환 및 외국무역관리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일본 헌정사상 총리 재임 중 범행 혐의로 총리 경험자가 체포된 첫 사례였다. 검찰은 다나카가 총리 재임 중 마루베니를 통해 5억 엔을 받고 전일본공수의 트라이스타 도입을 돕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보았다. 다나카는 이후 8월 보석으로 풀려났고 자민당을 탈당했지만 정계 영향력은 유지했다. 이 사건은 일본 정치 부패를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제정
록히드 스캔들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해외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는 기업을 처벌하는 해외부패방지법이 1977년 12월 19일 카터 대통령의 서명으로 제정됐다. 법은 미국 기업과 상장사가 외국 공무원에게 사업 편의를 대가로 금품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회계 투명성도 요구했다. 처치 위원회와 증권거래위원회 조사에서 드러난 기업들의 관행이 입법 배경이 됐다. 법은 이후 국제 반부패 협약과 각국 입법의 모델이 됐다. 스캔들은 일본 정치뿐 아니라 세계 기업 윤리 규제에도 영향을 남겼다.
도쿄지방재판소, 다나카에 징역 4년 유죄 판결
1983년 10월 12일 도쿄지방재판소는 다나카 가쿠에이에게 수뢰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총리 재임 중 마루베니로부터 5억 엔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거액의 추징금도 명령했다. 다나카는 곧바로 항소했고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한 채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었다. 이 판결은 일본 정치 자금과 금권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키웠다. 그러나 실제 형이 집행되지는 않았다.
다나카 가쿠에이 사망, 재판은 공소 기각으로 종결
다나카 가쿠에이는 항소심과 상고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3년 12월 16일 숨졌다.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유지됐지만 상고 중이었기 때문에 형은 확정되지 않았고 사망으로 재판이 종결됐다. 록히드 사건은 결국 총리 경험자에 대한 형사 책임이 최종 확정되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한편 일본에서는 이 사건 이후에도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돼 정치개혁 논의가 이어졌다. 록히드 스캔들은 지금도 전후 일본 최대 정치 스캔들로 평가된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록히드 뇌물 스캔들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 체포, 어떤 사건인가요?
- 1976년 2월 미 상원 처치 소위원회가 록히드가 항공기 판매를 위해 일본을 비롯한 각국에 거액의 뇌물을 뿌린 사실을 폭로했다. 일본에서는 7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체포됐고 1983년 유죄가 선고돼 전후 최대 정치 스캔들로 기록됐다.
- 록히드 뇌물 스캔들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 체포, 언제 일어났나요?
- 1976-02-04부터 1993-12-1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록히드 뇌물 스캔들과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 체포,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3-12-1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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