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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종교 반발과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 사건

1983-12 — 2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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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최후의 유혹'은 예수의 인간적 갈등과 환상을 그려 1988년 개봉을 전후해 기독교 단체의 격렬한 반발을 샀고, 10월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로 13명이 다치는 폭력 사태와 여러 나라의 상영 금지·검열 논란으로 이어졌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83-12 ~ 2020-02

19831건
  1. 파라마운트, 종교 단체 반발로 제작 취소

    마틴 스코세이지는 오래전부터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영화화하려 했고, 1983년 파라마운트가 폴 슈레이더 각본으로 제작을 승인했다. 그러나 보수 기독교계가 예수의 인간적 갈등과 성적 환상을 다룬다는 이유로 편지 운동과 항의 시위를 벌였다. 파라마운트는 예산 문제와 종교 반발을 이유로 같은 해 12월 제작을 전격 중단했다. 스코세이지는 이후 다른 영화를 만들며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이 취소는 종교 압력이 할리우드 제작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19871건
  1. 유니버설 후원으로 모로코 촬영 착수

    1986년 유니버설이 약 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프로젝트를 되살렸고, 1987년 10월 모로코에서 본 촬영이 시작되었다. 윌렘 더포가 예수, 하비 케이틀이 유다를 맡았고 바버라 허시가 막달라 마리아 역으로 출연했다. 촬영은 12월 말 마무리되었다. 제작 과정에서도 일부 종교 단체는 각본 내용을 문제 삼아 항의했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낮은 예산과 짧은 촬영 기간으로 서둘러 완성되었다.

19885건
  1. MCA 본사 앞 시위와 필름 매입 제안

    1988년 7월 종교 라디오 방송이 주도한 600여 명의 시위대가 유니버설 모회사 MCA 본사 앞에서 영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복음주의 지도자 빌 브라이트는 영화 원본 필름을 사들여 폐기하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보수 단체들은 극장에 항의 편지를 보내고 불매를 촉구했다. 개봉이 가까워지자 유니버설은 예정보다 앞당겨 8월 개봉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영화 내용을 미리 평가하지 않은 채 상영 자체를 막으려는 시도라는 비판과, 신앙을 모욕한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례였다.

  2. 미국 제한 개봉, 극장 앞 시위와 검열 논쟁

    1988년 8월 12일 영화는 미국에서 제한 개봉되어 첫 주말 약 40만 달러를 벌었다. 개봉 당일부터 일부 극장 앞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일부 극장주는 상영을 거부했다. 비디오 대여 체인 블록버스터는 이후 비디오 대여를 하지 않는 방침을 밝혀 유통 제한 논란도 일었다. 평론가들은 작품의 종교적 진정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지만 보수 종교계는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했다. 최종 전 세계 수익은 3380만 달러로 흥행은 제한적이었으나 표현의 자유 논쟁은 오래 이어졌다.

  3.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 13명 부상

    1988년 10월 22일 자정 직후 파리 라탱 지구의 에스파스 생미셸 극장에서 영화 상영 중 화재가 발생했다. 의자 밑에 설치된 염소산칼륨과 황산 시한 장치가 화재를 일으켰고, 관객 13명이 다쳤으며 4명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범인은 가톨릭 극우 성향의 통합주의 단체 소속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에서는 이 밖에도 낙서와 최루가스, 악취탄 투척 같은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사건은 영화를 둘러싼 종교 반발이 폭력으로 번진 가장 심각한 사례로 기록된다.

  4. 방화 용의자 기소와 극단 단체 수사

    1988년 10월 말 프랑스 당국은 생미셸 극장 방화 사건과 관련해 25세의 토마 라구르그를 방화 혐의로 입건하고 수사했다. 이후 수사에서 가톨릭 극단주의 단체 '기독교 여정' 관련 인물 등 8명이 기소 대상에 오른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들은 계획적 파괴와 방화 공모 혐의를 받았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 감정 사이의 갈등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극장은 보수 작업을 거쳐 3년 뒤 다시 문을 열었다.

  5. 그리스·튀르키예 등 여러 나라 상영 금지

    영화는 1988년 개봉 이후 그리스, 튀르키예,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여러 나라에서 상영 금지나 제한을 받았다. 가톨릭과 정교회가 강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에서는 정부와 법원이 신성모독을 이유로 검열을 단행했다. 필리핀과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금지 조치를 유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검열의 정당성을 두고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일부 국가에서는 비디오와 TV 방영도 제한됐다.

20011건
  1. 미주인권재판소, 칠레의 영화 검열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판결

    칠레 법원은 1988년부터 영화 상영을 막았고 대법원은 1997년 금지를 확정했다. 인권 단체와 시민들이 미주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재판소는 2001년 2월 5일 칠레의 검열이 미주인권협약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칠레는 이 판결에 따라 헌법을 개정해 영화 사전 검열 제도를 폐지했고, 영화는 2003년에야 칠레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이 판결은 영화 검열에 대한 국제 인권 규범의 대표적 선례로 평가된다. 사건은 종교적 이유의 검열이 국가 차원에서 장기간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20201건
  1. 싱가포르 정부 요구로 넷플릭스에서 삭제

    2020년 2월 넷플릭스는 싱가포르 정부의 요구에 따라 현지 서비스에서 '최후의 유혹'을 삭제했다. 싱가포르는 1988년부터 이 영화의 상영과 유통을 금지해 왔다. 영화 개봉 30여 년이 지났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신성모독을 이유로 한 규제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 사례였다. 스트리밍 시대에도 지역별 검열 요구가 콘텐츠 접근성을 좌우한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영화는 이후 비평계에서는 스코세이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재평가를 받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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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최후의 유혹' 종교 반발과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 '최후의 유혹'은 예수의 인간적 갈등과 환상을 그려 1988년 개봉을 전후해 기독교 단체의 격렬한 반발을 샀고, 10월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로 13명이 다치는 폭력 사태와 여러 나라의 상영 금지·검열 논란으로 이어졌다.
'최후의 유혹' 종교 반발과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1983-12부터 2020-02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최후의 유혹' 종교 반발과 파리 생미셸 극장 방화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20-02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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