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자흐스탄 '피의 1월' 유혈사태와 나자르바예프 측근 숙청
2022-01-02 — 2023-04-24
최종 갱신
이 문서는 실제 사건·사고를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편집 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세요.
1. 개요[편집]
액화석유가스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 유혈 소요로 번지며 정부가 총사퇴하고 러시아 주도 연합군이 투입됐으며, 이후 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측근과 친인척들이 잇따라 부패 혐의로 구속·처벌된 정치적 격변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2022-01-02 ~ 2023-04-24
LPG 가격 통제 해제로 자나오젠서 시위 촉발
카자흐스탄 정부가 1월 1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상한제를 해제하자 서부 망기스타우 지역의 석유도시 자나오젠에서 리터당 60텡게이던 가스 가격이 하루 만에 120텡게로 두 배 뛰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1월 2일 도로를 점거하며 항의 시위를 시작했고, 시위는 곧바로 인근 도시 악타우로 확산됐다. 표면적 계기는 연료비 인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자원 부국임에도 만연한 빈부격차와 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일가의 특권적 지배에 대한 오랜 불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나오젠은 2011년에도 유혈 진압으로 다수 사망자가 발생했던 지역이어서 이번 시위 확산은 정부에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카심-조마르트 톡타예프 대통령 정부는 초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다.
시위 전국 확산, 알마티서 유혈 폭동으로 격화
1월 4일 시위는 최대도시 알마티를 비롯해 아티라우, 악토베, 우랄스크, 타라즈, 심켄트, 크즐오르다, 카라간다와 수도 누르술탄까지 전국으로 번졌다. 알마티에서는 시위대가 지방정부 청사를 습격하고 경찰과 충돌하며 평화적 시위가 급속히 폭력적 소요로 변질됐다.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을 동원해 군중을 해산하려 했지만 통제력을 상실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관공서 건물과 차량이 불탔다. 시위 구호도 단순한 연료비 인하 요구를 넘어 정부 총사퇴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확대됐다. 30년 독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소요 사태로 평가되며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정부 총사퇴·비상사태 선포, CSTO에 파병 요청
톡타예프 대통령은 1월 5일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끌던 내각의 총사퇴를 수리하고 알마티와 망기스타우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곧 수도 누르술탄까지 확대했다. 그는 동시에 나자르바예프가 종신 의장으로 남아 있던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자신이 직접 접수한다고 발표해, 실질적으로 나자르바예프의 배후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사태가 통제 불능 상태로 치닫자 톡타예프는 옛소련권 군사동맹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테러 위협'을 이유로 병력 파견을 공식 요청했다. 이는 CSTO 창설 이후 처음으로 발동된 회원국 지원 요청이었으며, 러시아가 주도하는 외국 군대의 개입은 카자흐스탄 국내 정치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다시 부각시켰다. 정부는 LPG 가격을 다시 통제 수준으로 되돌리라고 지시했다.
톡타예프, '경고 없는 사살' 명령 발동
톡타예프 대통령은 1월 7일 TV 담화를 통해 군과 치안 병력에 '테러리스트에게 경고 없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밝히며 강경 진압 방침을 공식화했다. 그는 이번 소요가 국내외에서 훈련된 '테러 폭도'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해외로부터의 대화 요구를 일축했다. 이 발언은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즉각적인 비난을 받았으며, 실제로 이후 며칠간 군경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소요 진압 과정에서 최소 225~238명이 사망하고 9900명 이상이 체포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옛소련권에서 최근 수년간 벌어진 시위 진압 중 가장 유혈이 컸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전 국가안보위원장 마시모프, 반역 혐의로 체포
카자흐스탄 국가안보위원회(KNB)는 1월 8일 두 차례 총리를 지낸 카림 마시모프 전 KNB 위원장을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마시모프는 나자르바예프 시절부터 최측근으로 분류돼온 인물로, 그의 체포는 이번 소요 사태의 배후에 나자르바예프 세력과 톡타예프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이 있었다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당국은 마시모프가 소요를 배후 조종하거나 진압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정변을 기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구체적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자르바예프 일가와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적 숙청이 시작됐으며, 톡타예프는 나자르바예프 시대 엘리트의 부와 특권에 대한 공개 비판 수위를 높여갔다. 서방 외교가는 이 사건이 카자흐스탄 권력 구도의 근본적 재편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했다.
톡타예프 '질서 회복' 선언, CSTO 철수 개시
톡타예프 대통령은 1월 11일 화상으로 열린 CSTO 정상회의에서 카자흐스탄의 질서가 회복됐고 소요가 종식됐다고 선언했으며, 나자르바예프와 그 측근들이 축적한 소득 불평등과 특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1월 13일에는 CSTO 평화유지군의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수됐다며 병력의 단계적 철수를 발표했고, 철군은 1월 19일까지 완료됐다. CSTO 측은 이번 파병 기간 동안 사상자나 장비 손실이 전혀 없었다고 밝혀 순수한 '질서 유지' 목적이었음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 주도 병력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웃국에 투입된 선례를 남기면서, 향후 옛소련권 국가들의 국내 위기에 러시아가 개입할 명분을 강화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톡타예프는 이후 국방장관을 전격 경질하는 등 안보라인 전면 개편에 나섰다.
나자르바예프 조카 사티발디, 도피 시도 중 체포
나자르바예프의 조카인 카이라트 사티발디 전 국가안보위원회 소장이 3월 알마티 국제공항에서 두바이로 도피를 시도하던 중 체포됐다. 그는 국영기업 카자흐텔레콤과 교통서비스센터에서 직권을 남용해 대규모 국가자산을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이번 체포는 1월 유혈사태 직후 톡타예프가 나자르바예프 일가에 대한 전방위 사정을 예고한 뒤 나온 첫 대형 조치로, 나자르바예프의 정치적 기반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그는 이후 9월 6년형을 선고받고 국가안보위원회 소장 계급과 훈장을 모두 박탈당했으며, 10년간 공직 취임이 금지됐다. 사티발디는 이후 국가에 약 15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반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시모프, 국가반역죄로 징역 18년 선고
카자흐스탄 법원은 2023년 4월 24일 카림 마시모프 전 국가안보위원장에게 국가반역, 무력에 의한 권력 탈취 시도,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가 2022년 1월 유혈사태를 배후에서 조직하는 데 관여했다고 판단했으며, 종신 공직 취임 금지 처분도 함께 내렸다. 이는 사건 발생 1년 3개월 만에 나온 최고위직 인사에 대한 첫 확정 판결로, '피의 1월' 사태의 법적 책임 규명 작업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재판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돼 투명성이 부족했다고 비판했으며, 실제 유혈진압에 책임 있는 하급 치안 지휘관들에 대한 처벌은 상대적으로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이 판결로 나자르바예프 시대의 마지막 핵심 실세가 완전히 실각하며 톡타예프 체제로의 권력 이양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2022년 카자흐스탄 '피의 1월' 유혈사태와 나자르바예프 측근 숙청, 어떤 사건인가요?
- 액화석유가스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 유혈 소요로 번지며 정부가 총사퇴하고 러시아 주도 연합군이 투입됐으며, 이후 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의 측근과 친인척들이 잇따라 부패 혐의로 구속·처벌된 정치적 격변 사건이다.
- 2022년 카자흐스탄 '피의 1월' 유혈사태와 나자르바예프 측근 숙청, 언제 일어났나요?
- 2022-01-02부터 2023-04-24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2022년 카자흐스탄 '피의 1월' 유혈사태와 나자르바예프 측근 숙청,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23-04-24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선 제안
이 문서에 대한 개선을 제안할 수 있어요. 제안은 관리자 검토 후 반영됩니다.
개선 제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