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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종결

엑손 발데즈호 원유 유출, 알래스카를 덮친 당시 미국 최악의 유조선 사고

1989-03-24 — 2009-12-15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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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9년 3월 24일 유조선 엑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사운드의 블라이 암초에 좌초해 약 1080만 갤런의 원유를 쏟았고, 해안선 1300마일이 오염됐다. 선장 재판, 오일오염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까지 20년 넘게 이어진 환경 참사다.

2. 전개 과정[편집]

11개 기록 · 1989-03-23 ~ 2014-03-24

19894건
  1. 발데즈 터미널에서 원유 5300만 갤런을 싣고 출항

    엑손 발데즈호는 알래스카 횡단 송유관의 종착지인 발데즈 해상 터미널에서 약 5309만 4510갤런의 원유를 선적했다. 이 배는 3월 23일 밤 9시 12분경 터미널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항해에 올랐다. 출항 직후 프린스윌리엄사운드 항로에서는 빙산 조각을 피하기 위해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는 선택이 이어지게 된다. 이 거대한 화물 규모는 이후 발생할 유출의 잠재적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주는 배경이 된다. 사고는 출항 불과 몇 시간 뒤에 일어났다.

  2. 블라이 암초 좌초로 화물창 11개 중 8개 파손

    엑손 발데즈호는 3월 24일 0시 4분경 프린스윌리엄사운드의 블라이 암초에 부딪혀 좌초했다. 사고 지점은 알래스카 타티틀렉 마을에서 서쪽으로 약 6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11개의 화물창 가운데 8개가 파손됐고 약 3시간 15분 만에 580만 갤런가량이 흘러나갔다. 최종 유출량은 약 1080만 갤런(26만 배럴)으로 추정되며 해안선 약 1300마일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해역에서 일어난 가장 큰 유조선 유출 사고로 기록됐다.

  3. 선장 헤이즐우드의 음주 의혹과 초기 대응 지연 논란

    사고 당시 선장 조지프 헤이즐우드가 선교를 비운 채 3등 항해사에게 조타를 맡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책임 공방이 시작됐다. 선장의 음주 여부가 큰 쟁점이 되었고 혈중 알코올 검사는 사고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뤄졌다. 엑손은 사고 직후 헤이즐우드를 해임했다. 초기 며칠간 기름 확산을 막을 방제 장비와 인력이 제때 투입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 논란은 이후 형사재판과 기업 책임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다.

  4. 확산된 기름과 야생동물 대량 폐사

    유출 며칠 뒤 강풍이 불면서 기름띠가 사운드 서남쪽으로 빠르게 퍼졌고 방제 선택지가 크게 줄었다. 이번 사고로 바닷새 10만~25만 마리, 해달 2800마리 이상, 항구물범 약 300마리, 흰머리독수리 247마리, 범고래 22마리가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청어와 연어 등 어업 자원도 큰 타격을 입어 지역 어민과 원주민 공동체의 생계가 무너졌다. 기름은 최종적으로 해안선 약 1300마일을 오염시켰고 그중 약 200마일은 중등도 이상으로 심하게 오염됐다. 이 피해 규모는 환경 재난의 상징으로 각인됐다.

19902건
  1. 헤이즐우드 형사재판, 과실 유출 경범죄만 유죄

    알래스카 주 법원 배심은 헤이즐우드에게 제기된 형사 혐의 가운데 음주 조타, 무모한 위험 야기, 형사 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평결했다. 반면 원유를 과실로 방출한 경범죄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이 판결은 사고의 큰 규모에 비해 개인 형사책임이 가볍게 정리됐다는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헤이즐우드는 이후 법원 명령에 따른 사회봉사와 배상금 부과 등의 처분을 받았다. 그의 재판은 기업과 개인 책임이 어떻게 나뉘는지 보여 주는 사례로 남았다.

  2. 오일오염법(OPA 90) 제정

    사고 이후 미 의회는 유조선 유출 책임과 예방 규정을 대폭 강화한 1990년 오일오염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유출 책임자에게 방제 비용과 자연자원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우고, 선박 이중선체 도입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프린스윌리엄사운드에서 100만 갤런 넘는 유출을 일으킨 선박의 해당 해역 운항을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2002년 기준 이 조항 때문에 18척의 선박이 사운드에 들어오지 못했다. 엑손 발데즈호 사고는 미국 해양 환경 규제의 분기점이 되었다.

19911건
  1. 엑손, 연방·알래스카 정부와 약 10억 달러 합의

    엑손은 미국 연방정부와 알래스카 주정부가 제기한 민형사 소송을 약 10억 달러 규모로 합의했다. 합의금은 자연자원 피해 복구와 생태계 연구, 주민 지원 등에 쓰이도록 설계됐고 엑손발데즈 기름유출 신탁위원회가 관리를 맡았다. 엑손은 별도로 약 20억 달러를 직접 방제에 지출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합의는 어민과 지역 주민 등 민간 원고들의 손해를 모두 해결하지 못했다.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이 장기화하는 배경이 되었다.

19941건
  1. 앵커리지 연방 배심, 징벌적 손해배상 50억 달러 평결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연방 배심은 어민과 원주민, 지역 주민 등 원고단에게 보상적 손해배상 2억 8700만 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 50억 달러를 인정했다. 배심은 엑손이 알코올 문제가 있던 헤이즐우드를 선장직에 둔 점에서 무모했다고 판단했다. 엑손은 항소했고 징벌적 배상액은 항소심에서 25억 달러로 줄었다. 이 평결은 기업 책임의 수위를 둘러싼 15년 가까운 법적 다툼의 시작이었다. 피해 주민 상당수는 그 사이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20081건
  1. 미 연방대법원, 징벌적 배상을 5억 750만 달러로 감액

    연방대법원은 엑손 쉬핑 대 베이커 사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25억 달러에서 5억 750만 달러로 낮췄다. 대법원은 엑손의 행위를 악의적이라기보다는 부주의 이상이라고 보았고 보상적 배상액과 1대 1 비율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엑손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심리에서 빠졌다. 이 판결로 원고 약 3만 명이 받을 몫은 크게 줄었고 기업 징벌적 배상의 상한을 정하는 선례가 되었다. 사고 19년 만에 법적 판단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20091건
  1. 엑손, 징벌적 배상금 5억 750만 달러와 이자 전액 지급

    엑손은 대법원이 확정한 징벌적 손해배상금 5억 750만 달러에 이자를 더해 원고들에게 지급했다. 배상금은 수천 명의 어민과 원주민, 지역 주민에게 나뉘어 분배됐다. 사고 후 20년 넘게 기다린 원고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엑손은 이 외에도 방제 비용과 정부 합의금 등으로 수십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써 사고에 따른 주요 민사 배상 절차가 사실상 종결됐다.

20141건
  1. 사고 25주년, NOAA 평가 '일부 회복, 일부는 여전히 오염'

    NOAA는 사고 25주년을 맞아 생태계 상태를 평가하면서 해달 개체수가 사고 이전 수준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반면 범고래 한 무리는 회복이 불투명했고 청어 개체군도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일부 해안에는 여전히 약 1만 6천~2만 1천 갤런의 기름이 남아 있다고 추정됐다. 기름은 사고 지점에서 최대 450마일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됐다. 이 사고는 장기적 환경 영향의 대표 사례로 계속 연구되고 있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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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엑손 발데즈호 원유 유출, 알래스카를 덮친 당시 미국 최악의 유조선 사고, 어떤 사건인가요?
1989년 3월 24일 유조선 엑손 발데즈호가 알래스카 프린스윌리엄사운드의 블라이 암초에 좌초해 약 1080만 갤런의 원유를 쏟았고, 해안선 1300마일이 오염됐다. 선장 재판, 오일오염법 제정, 징벌적 손해배상 대법원 판결까지 20년 넘게 이어진 환경 참사다.
엑손 발데즈호 원유 유출, 알래스카를 덮친 당시 미국 최악의 유조선 사고, 언제 일어났나요?
1989-03-24부터 2009-12-1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엑손 발데즈호 원유 유출, 알래스카를 덮친 당시 미국 최악의 유조선 사고,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9-12-1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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