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승조원 118명 전원 사망과 늑장 대응 파문
2000-08-12 — 2002-07-26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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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00년 8월 12일 바렌츠해 훈련 중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 K-141 쿠르스크호가 어뢰 폭발로 침몰해 118명이 전원 사망했고, 러시아 정부의 늑장 국제 지원 요청과 사실 은폐 논란이 푸틴 집권 첫해 최대 위기로 번진 사건이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2000-08-12 ~ 2002-07-26
바렌츠해 훈련 중 어뢰 폭발 두 차례, 쿠르스크호 해저 108m에 가라앉음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북방함대 대규모 훈련에 참가한 오스카-II급 핵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 K-141 쿠르스크호가 바렌츠해에서 연습용 어뢰 발사를 준비하던 중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지진계에는 첫 폭발 약 2분 뒤 규모가 약 250배 큰 두 번째 폭발이 기록되었고, 이는 어뢰 탄두 여러 발이 연쇄 폭발한 것으로 분석된다. 잠수함은 수심 약 108m 해저에 가라앉았으며 승조원 118명이 타고 있었다. 첫 폭발과 이어진 화재로 앞쪽 구획의 승조원 다수가 즉사했고, 후방 구획의 일부 승조원만 한동안 생존한 것으로 훗날 확인되었다. 러시아 해군은 사고 사실을 곧바로 공개하지 않았고 이 지연은 이후 구조 실패와 여론 악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러시아 해군 '경미한 기술적 문제' 발표와 충돌설 주장, 생존 가족들의 분노
사고 이틀 뒤인 8월 14일에야 러시아 당국은 쿠르스크호가 훈련 중 '경미한 기술적 결함'을 겪어 해저에 가라앉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해군은 승조원과 교신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선내 생존자가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고 구조 가능성에 대한 낙관론을 퍼뜨렸다. 해군 수뇌부는 사고 원인으로 외국 잠수함과의 충돌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정부는 일리야 클레바노프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꾸렸으나 초기 구조 시도는 구조정 방향 착오와 악천후로 번번이 실패했다. 모스크바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한다는 비판이 가족과 언론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었다.
러시아 구조잠수정 AS-34 해치 결합 거듭 실패, 장비 부품 돌려쓰며 구조 지연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러시아 해군은 구조잠수정 AS-34로 쿠르스크호 후방의 탈출 해치에 결합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거센 해류와 높은 파도, 잠수정 추진장치 손상이 겹쳤고 다른 구조정 AS-32의 부품을 떼어 AS-34를 수리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영국과 노르웨이 등은 구조 장비와 인력을 제공하겠다고 사고 직후부터 제의했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를 거절하며 자국 장비만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이 사이 선내에 남은 승조원의 산소와 생존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노후한 구조 장비와 준비 부족이 드러나면서 러시아 해군의 위기 대응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푸틴, 사고 닷새째 영국·노르웨이 구조 지원 수락
8월 17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사고 발생 닷새째에야 영국과 노르웨이의 구조 지원 제의를 받아들였다. 푸틴은 당시 흑해 휴양지에서 휴가 중이었고 사태 초기에 모스크바로 복귀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외국 제안을 거절한 기간 동안 구조에 쓸 수 있었던 시간이 허비되었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쏟아졌다. 영국의 LR5 구조잠수정과 노르웨이 잠수 인력이 사고 해역으로 급파되었고, 8월 19일 노르웨이 선박 노르망 파이오니어호가 LR5를 싣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결정은 대통령 취임 첫해였던 푸틴 정부가 겪은 최대의 정치적 위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노르웨이 잠수부 해치 개방, 선내 침수 확인과 '전원 사망' 공식 발표
8월 21일 노르웨이 잠수부들이 쿠르스크호 탈출 해치를 열었고 내부가 이미 물에 잠겨 있으며 생존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러시아 잠수부들이 선체 내부 진입에 성공했고 9번 구획에서 시신 12구가 수습되었는데 모두 심하게 불에 탄 상태였다. 이는 승조원이 침몰 즉시 사망했다는 기존 발표와 달리 일부가 상당 시간 생존했다는 점을 뒷받침했다. 북방함대 참모장은 같은 날 전원 사망을 공식 발표했고, 군 지휘관은 TV 연설에서 유족에게 용서를 구했다. 푸틴은 8월 23일을 전국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푸틴, 비디야예보 기지에서 유족 면담, 항의하던 어머니 진정제 주사 논란
8월 25일 푸틴 대통령은 북방함대 기지가 있는 비디야예보를 찾아 유족과 군 관계자들을 만났다. 수 시간 이어진 비공개 면담에서 유족들은 정부의 늑장 대응과 거짓 발표에 거세게 항의했고, 면담 과정 일부가 독일 방송사의 위성 중계로 외부에 알려졌다. 항의하던 한 승조원의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진정제 주사를 맞고 끌려나가는 장면이 전해져 여론이 크게 악화되었다. 푸틴은 유족에게 10년치 급여 상당의 보상과 주택·교육 지원을 약속했다. 이어 사태의 책임을 군의 노후화와 언론 보도 태도에 돌리는 발언을 해 비판이 이어졌다.
러시아 위원회 '외국 잠수함 충돌설' 제기, 미 국방장관 코언 전면 부인
러시아 정부 위원회는 8월 말 쿠르스크호가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기뢰나 외국 잠수함, 대형 선박과 충돌했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훈련을 미국과 영국 잠수함이 감시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윌리엄 코언 미국 국방장관은 9월 22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미국 함정이 어떤 접촉에도 관여했을 수 없다며 충돌설을 부인했다. 러시아 해군 지휘부는 이후에도 몇 달간 충돌설을 반복했지만 구체적 증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2001년 지진 신호 분석에서는 충돌이 아닌 내부 폭발이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 충돌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이 과정은 러시아 군 당국의 정보 통제와 책임 회피 행태를 보여 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네덜란드 업체 주도로 쿠르스크호 선체 인양, 시신 115구 수습
러시아 정부는 2001년 네덜란드 마무트 등이 참여한 6천5백만 달러 규모 계약으로 쿠르스크호 선체 인양 사업을 추진했다. 2001년 10월 대형 바지선을 이용한 작업으로 선체가 해저에서 들어 올려져 건선거로 옮겨졌고, 어뢰 구획이 있던 앞부분은 사전에 절단되어 해저에 남겨졌다. 인양 과정에서 승조원 유해 115구가 수습된 것으로 전해졌다. 선체 조사를 통해 폭발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핵심 증거가 확보되었다. 인양은 유족들의 장례와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정부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사례로 평가되었다.
검찰, 과산화수소 어뢰 누출이 원인이라 결론, 책임자 형사처벌 없이 종결
2002년 7월 26일 블라디미르 우스티노프 검찰총장과 정부 위원회는 쿠르스크호 사고의 원인이 4번 발사관에 장전된 연습용 65-76 '키트' 어뢰의 고농도 과산화수소 연료 누출이라고 발표했다. 누출된 과산화수소가 촉매 반응을 일으켜 첫 폭발이 났고 그 열로 다른 어뢰 탄두들이 유폭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조사 결과 133권 분량의 기밀 보고서가 작성되었으며, 정부는 요약본만 공개해 규율 위반과 장비 노후, 관리 부실 문제를 시인했다. 그러나 특정 개인에게 형사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쿠르스크호 침몰은 러시아 해군 개혁과 언론 통제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남겼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승조원 118명 전원 사망과 늑장 대응 파문, 어떤 사건인가요?
- 2000년 8월 12일 바렌츠해 훈련 중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 K-141 쿠르스크호가 어뢰 폭발로 침몰해 118명이 전원 사망했고, 러시아 정부의 늑장 국제 지원 요청과 사실 은폐 논란이 푸틴 집권 첫해 최대 위기로 번진 사건이다.
-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승조원 118명 전원 사망과 늑장 대응 파문, 언제 일어났나요?
- 2000-08-12부터 2002-07-2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승조원 118명 전원 사망과 늑장 대응 파문,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2-07-2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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