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랜드호 참사, 시카고 강 정박 중 전복으로 840여 명 사망(1915)
1915-07-24 —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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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15년 7월 24일 웨스턴일렉트릭사 직원 야유회 승객을 태우던 여객선 이스트랜드호가 시카고 강 부두에서 좌현으로 전복해 승객 841명과 승무원 2명이 사망한 사고로, 구명보트 의무화가 오히려 선박을 더 불안정하게 했다는 지적과 형사 책임 논란을 남겼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03-05-06 ~ 1946-10-31
이스트랜드호 진수, '호수의 그레이하운드'로 불림
SS 이스트랜드는 1902년 10월 미시간증기선회사가 포트휴런의 젠크스조선소에 주문해 1903년 5월 6일 진수되었다. 빠른 속도로 '호수의 그레이하운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취항 직후부터 설계상 안정성이 낮다는 문제가 지적되었다. 같은 해 가을 보일러와 기계 위치를 바꾸는 개조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복원력을 더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박은 이후 반복적인 경사 사고를 일으켰다.
사우스헤이븐 출항 직후 전복 직전 상황 발생
1904년 7월 17일 약 3,000명의 승객을 태우고 사우스헤이븐을 떠난 이스트랜드호가 전복될 뻔했다. 승무원들은 소방 호스를 이용해 승객들의 혼란을 진정시켰다. 이 사고 이후 승선 정원은 2,800명으로 줄었다. 이후에도 1906년과 1912년에 심한 기울어짐이 보고되었다. 1912년 7월 클리블랜드에서는 승객 승선 중 25도까지 기울었다고 전해진다.
선원법 시행으로 구명보트 설치 의무화
1915년 3월 윌슨 대통령은 로버트 라폴렛 상원의원이 주도한 연방 선원법에 서명했다. 이는 타이태닉호 참사 이후 승객선에 충분한 구명보트를 갖추도록 한 법이었다. 이스트랜드호에도 구명보트를 추가해야 했고 이로 인한 무게 증가가 이미 위태로운 선박의 상부 중량을 더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전에는 콘크리트 바닥 설치로 15~20톤이 추가되기도 했다. 안전을 위한 규정이 역설적으로 위험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웨스턴일렉트릭 야유회 승객 탑승 중 좌현으로 전복
1915년 7월 24일 아침 6시 30분부터 웨스턴일렉트릭 직원과 가족들이 시카고 강 남안 클라크가와 라살가 사이 부두에서 미시간시티행 야유회 승선을 시작했다. 7시 10분경 승객이 정원 2,500명에 이르렀고 7시 28분 배는 좌현으로 급격히 기울더니 수심 약 6미터의 강바닥에 옆으로 누워버렸다. 승무원이 밸러스트 탱크에 물을 넣어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는 부두에 묶인 채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전복되었다. 많은 승객이 선실 내부에 갇혔다.
구조 작업과 사망자 집계, 시신은 제2연대 무기고에 안치
인근 선박 케노샤호 승무원 등이 구조에 나섰고 간호사 헬렌 레파가 구조 현장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 페토스키호의 피터 보일은 승객 구조 중 익사했다. 승객 841명과 승무원 2명이 숨졌으며 이 중 체코계 이민자가 220명이었다. 희생자의 시신은 제2연대 무기고에 모아졌다. 웨스턴일렉트릭사는 구호를 위해 10만 달러를 내놓았다. 사망자 수는 당시 시카고 역사상 최악의 사고 중 하나였다.
이스트랜드호 인양 후 일리노이 해군예비대에 매각
전복된 이스트랜드호는 1915년 8월 14일 강바닥에서 인양되었다. 이후 경매를 거쳐 일리노이 해군예비대에 팔렸다. 선박은 법적 증거물로서 조사 대상이 되었다. 한편 사고 원인으로는 정원 초과, 밸러스트 관리 부실, 설계 결함이 지목되었다. 이는 이후 재판의 쟁점이 되었다.
관련자 6명 기소, 법원은 인도 청구를 증거 부족으로 기각
대배심은 정원 초과 승객, 밸러스트 수 관리 실수, 선박의 결함 있는 구조로 불안정한 상태가 생겼다는 이유로 6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1916년 법원은 '티끌만큼의 증거'만 있다며 인도 요청을 기각했다. 법원은 피고인 일부가 승선하지 않았고 선장과 기관사의 행동도 통상적인 업무 범위로 보았다. 변호인으로는 클래런스 대로우가 활동했다. 결국 아무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미 해군이 인수해 USS 윌메트로 취역
이스트랜드호는 1918년 2월 USS 윌메트로 개명되었고 9월 20일 해군 포함으로 취역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는 참전하기엔 너무 늦었고 이후 오대호에서 훈련함으로 쓰였다. 1921년에는 항복한 독일 잠수함 UC-97을 격침하는 임무를 맡았다. 1943년 8월에는 루스벨트 대통령 일행의 낚시 여행을 수송하기도 했다. 참사의 배가 이후 오랫동안 해군에서 운용된 점이 눈길을 끈다.
해체 매각, 1947년 해체 완료
USS 윌메트는 1945년 11월 28일 퇴역하고 12월 19일 해군 명부에서 삭제되었다. 1946년 10월 31일 하이먼마이클스사에 해체용으로 매각되어 1947년 해체가 마무리되었다. 이로써 시카고 강 참사의 배는 완전히 사라졌다. 참사 현장에는 이후 추모 표지가 세워졌다. 이스트랜드호 참사는 안전 규제와 선박 복원력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는 사례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이스트랜드호 참사, 시카고 강 정박 중 전복으로 840여 명 사망(1915), 어떤 사건인가요?
- 1915년 7월 24일 웨스턴일렉트릭사 직원 야유회 승객을 태우던 여객선 이스트랜드호가 시카고 강 부두에서 좌현으로 전복해 승객 841명과 승무원 2명이 사망한 사고로, 구명보트 의무화가 오히려 선박을 더 불안정하게 했다는 지적과 형사 책임 논란을 남겼다.
- 이스트랜드호 참사, 시카고 강 정박 중 전복으로 840여 명 사망(1915), 언제 일어났나요?
- 1915-07-24부터 1916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이스트랜드호 참사, 시카고 강 정박 중 전복으로 840여 명 사망(1915),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1916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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