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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종결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 직전까지 간 13일

1962-10-14 — 196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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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62년 10월 미국이 U-2 정찰로 쿠바의 소련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확인하자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 격리를 선포하며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대치했고, 10월 28일 흐루쇼프가 미사일 철수를 발표하며 막을 내린 냉전 최대의 위기다.

2. 전개 과정[편집]

9개 기록 · 1962-07 ~ 1962-11-20

  1. 소련, 쿠바에 핵미사일 비밀 반입 개시

    1962년 여름 소련은 미국이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한 주피터 미사일에 맞서고 쿠바 혁명정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쿠바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몰래 들여오기 시작했다. 작전명은 '아나디르'였고 병력과 장비는 위장 화물로 운송됐다. 흐루쇼프는 미국이 발견하기 전에 기정사실로 만들 수 있다고 계산했다. 피델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의 침공 위협에 대한 방어책으로 이를 수용했다. 이 비밀 배치는 미소 군사 균형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다.

  2. U-2 정찰기, 쿠바 서부 미사일 기지 촬영

    1962년 10월 14일 미 공군 U-2 정찰기가 쿠바 서부 상공을 비행하며 소련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로 보이는 시설을 촬영했다. 이튿날 CIA 사진 분석관들이 이를 확인했고 16일 아침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이 케네디에게 보고했다. 미사일은 미 본토 대부분을 사정권에 둘 수 있다고 평가됐다. 케네디는 곧바로 소수 고위 참모로 구성된 '엑스콤'을 소집했다. 이로써 비공개 상태에서 13일간의 대응 논의가 시작됐다.

  3. 엑스콤 소집, 공습·봉쇄·외교 해법 논쟁

    1962년 10월 16일부터 케네디는 엑스콤을 열어 대응책을 논의했다. 군 수뇌부는 공습과 침공을 주장했고 일부 참모는 해상 봉쇄와 외교적 협상을 선호했다.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 등이 기습 공습이 '미국판 진주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며 격리안으로 기울었다. 케네디는 비밀을 유지한 채 일정을 소화하며 대국민 발표를 준비했다. 이 논의 과정은 훗날 위기 관리의 교과서로 연구됐다.

  4. 케네디 대국민 연설, 쿠바 해상 격리 선포

    1962년 10월 22일 저녁 케네디는 TV 연설로 쿠바의 소련 미사일 기지를 공개하고 쿠바로 향하는 공격용 무기 선적을 막기 위한 해상 격리를 선언했다. 그는 쿠바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소련의 미국 공격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군은 전략공군사령부 경계 태세를 데프콘 3으로 올리고 군사 대비를 강화했다. 전 세계는 핵전쟁 가능성에 불안에 빠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사재기가 벌어졌다. 이 연설로 위기는 비밀 협상에서 국제 대치로 바뀌었다.

  5. 격리선 발효, 소련 선박 정지

    1962년 10월 24일 오전 10시 격리가 발효됐고 쿠바로 향하던 소련 선박들이 격리선 부근에서 멈추거나 항로를 바꿨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서로 눈싸움을 하다가 상대가 눈을 깜박였다'는 취지로 상황을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미 해군은 소련 잠수함 추적과 함께 쿠바 접근 선박 검문 태세를 유지했다. 유엔에서는 우 탄트 사무총장이 중재에 나섰다. 군사적 충돌 위험은 여전히 컸지만 즉각적인 충돌은 피했다.

  6. 흐루쇼프의 비공식 타협 서한

    1962년 10월 26일 흐루쇼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미사일을 철수하겠다는 취지의 사신을 케네디에게 보냈다. 같은 날 소련 정보 계통을 통한 비공식 제안도 오가며 외교 해법의 틈이 열렸다. 그러나 쿠바 내에서는 카스트로가 미국 침공이 임박했다고 보고 소련에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군부는 공습 준비를 계속하라고 압박했다. 위기는 해결과 확전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7. '검은 토요일', U-2 격추와 두 번째 서한

    1962년 10월 27일 토요일 쿠바 상공에서 소련 지대공미사일이 미 U-2기를 격추해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 소령이 숨졌다. 같은 날 흐루쇼프의 두 번째 서한은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미사일 철수를 요구하는 내용이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케네디는 첫 번째 서한에만 응답하는 쪽으로 정리했고, 로버트 케네디가 소련 대사에게 터키 미사일을 추후 철수할 의사를 비공식 전달했다. 군사 보복 압박이 커졌지만 케네디는 즉각적 보복 대신 외교를 택했다. 이날은 위기의 정점으로 꼽힌다.

  8. 흐루쇼프, 모스크바 방송으로 미사일 철수 발표

    1962년 10월 28일 흐루쇼프는 모스크바 라디오를 통해 쿠바 내 미사일을 해체하고 소련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케네디는 이를 환영하며 위기 해소의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터키 주피터 미사일은 비공개 조건으로 이후 철수됐다. 카스트로는 사전 협의 없이 이뤄진 철수에 격분했고 소련과의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핵전쟁 위기는 극적으로 가라앉았다.

  9. 케네디, 격리 해제 발표

    1962년 11월 20일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에서 일류신 폭격기까지 철수하기로 동의했다고 보고 해상 격리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미사일 해체와 검증은 공해상에서 소련 선박 갑판을 사진 촬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위기 이후 양국은 핵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1963년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 직통전화를 설치하고 부분핵실험금지조약에 서명했다. 이 위기는 핵 시대 지도자들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보여 준 사례로 평가된다. 동시에 양국 군사 체제의 오판 위험을 드러냈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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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 직전까지 간 13일, 어떤 사건인가요?
1962년 10월 미국이 U-2 정찰로 쿠바의 소련 핵미사일 기지 건설을 확인하자 케네디 대통령이 해상 격리를 선포하며 미소가 핵전쟁 직전까지 대치했고, 10월 28일 흐루쇼프가 미사일 철수를 발표하며 막을 내린 냉전 최대의 위기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 직전까지 간 13일, 언제 일어났나요?
1962-10-14부터 1962-11-20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핵전쟁 직전까지 간 13일,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62-11-20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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