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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종결

지노비예프 편지 사건, 1924년 영국 총선 직전 공개된 위조 코민테른 서한과 노동당 패배

1924-09-15 — 199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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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24년 10월 총선을 나흘 앞두고 데일리 메일 등이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예프 명의의 영국 공산당 지령 서한을 보도해 램지 맥도널드 노동당 정부가 타격을 입은 사건으로, 훗날 이 편지는 위조로 판단되었고 1999년 영국 외무부 보고서가 경위를 정리했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24-02 ~ 1999-02

19247건
  1. 맥도널드 노동당 정부, 소련을 승인하고 통상 협상에 착수

    1923년 말 총선에서 보수당이 과반을 잃자 1924년 1월 램지 맥도널드가 이끄는 영국 최초의 노동당 소수 정부가 자유당의 외부 지원을 받아 출범했다. 맥도널드는 총리 겸 외무장관으로서 2월 소련을 공식 승인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통상조약과 함께 영국이 소련에 차관을 제공하는 문제를 담은 일반조약이 체결되어 보수당과 자유당 일각의 반발을 샀다. 이러한 대소 유화 정책은 훗날 지노비예프 편지가 먹혀들 정치적 토양이 되었다.

  2. 지노비예프 명의 서한 작성일자로 알려진 날

    문제의 편지는 1924년 9월 15일자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의장 그리고리 지노비예프 명의로 영국 공산당 지도부에 보낸 문서라고 알려졌다. 내용은 영국·소련 조약 비준을 앞두고 영국 노동계급과 군대 안에서 선전선동을 강화하고 혁명 준비를 하라는 취지였다. 편지는 영국 정보기관 경로로 외무부에 전달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정확한 입수 경위와 출처는 이후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소련 측은 처음부터 이 서한이 자신들이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3. 캠벨 사건 여파로 맥도널드 정부 불신임, 총선 소집

    공산당 신문 편집인 J. R. 캠벨에 대한 기소를 정부가 철회한 일을 두고 야당이 정치적 개입이라고 공격하면서 1924년 10월 8일 하원에서 정부 불신임안이 가결되었다. 맥도널드는 의회 해산을 요청했고 총선일은 10월 29일로 정해졌다. 선거 운동 내내 노동당은 소련과의 조약을 두고 '적색 위협' 공세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코민테른 서한이 등장하면서 선거전의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4. 외무부, 주영 소련 대리대사 라코프스키에게 항의 각서 발송

    1924년 10월 하순 외무부 고위 관료들은 편지를 진본으로 판단하고 소련 대리대사 크리스티안 라코프스키에게 항의 각서를 보내기로 했다. 각서 작성과 발송을 두고 총리였던 맥도널드가 충분히 검증하기 전에 공개 여부가 정해졌다는 비판이 나중에 제기되었다. 맥도널드는 편지의 진위를 확신하지 못해 확인 전까지 공개를 미루려 했다는 취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편지 내용은 이미 외부로 새어 나간 상태였다.

  5. 데일리 메일 등 보수 언론, 서한 전문 보도

    1924년 10월 25일 데일리 메일은 '사회주의자들의 주인이 꾸민 내전 음모' 같은 취지의 제목으로 편지를 1면에 대서특필했고 타임스와 모닝 포스트 등도 관련 내용을 실었다. 보도는 총선을 나흘 앞둔 시점에 터져 노동당이 해명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노동당은 편지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맞섰고 소련과 영국 공산당도 위조라고 주장했다. 이 보도는 선거를 소련 문제를 중심으로 한 국면으로 바꿔 놓았다.

  6. 총선에서 보수당 압승, 노동당 정부 퇴장

    10월 29일 총선에서 보수당은 400석이 넘는 의석을 얻어 압승했고 노동당은 의석이 크게 줄었으며 자유당은 급격히 몰락했다. 그러나 노동당 득표수는 오히려 직전 선거보다 늘어, 패인을 편지 하나로 돌리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스탠리 볼드윈이 11월 초 새 정부를 구성했고 소련과의 조약은 폐기되었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오랫동안 이 편지가 선거를 가로챈 것이라고 믿었다.

  7. 소련과 지노비예프의 위조 주장, 위조 경로 의혹 확산

    선거 뒤에도 지노비예프와 소련 정부는 편지가 위조라고 거듭 밝혔고 노동당 안에서는 정보기관과 보수 인사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위조 배후로는 베를린과 리가 등지에 있던 러시아 백군 망명자 집단이 지목되었다. 이런 논란은 이후 수십 년 동안 정치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확실한 입증은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았고, 연구자들은 위조 경위를 계속 추적했다.

19991건
  1. 로빈 쿡 외무장관 지시 외무부 조사 보고서, 위조 가능성 높다고 결론

    1998년 외무장관 로빈 쿡의 지시로 외무부 수석 역사가 질 베넷이 내부 기록을 조사했고 그 결과 보고서가 1999년 2월 공개되었다. 보고서는 편지가 위조일 가능성이 매우 높고 러시아 망명자 집단이 만들었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보기관이 노동당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조직적으로 음모를 꾸몄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정보 관계자가 편지의 보도에 관여했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아, 논쟁은 완전히 종결되지는 않았다.

3. 같이 보기[편집]

분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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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지노비예프 편지 사건, 1924년 영국 총선 직전 공개된 위조 코민테른 서한과 노동당 패배, 어떤 사건인가요?
1924년 10월 총선을 나흘 앞두고 데일리 메일 등이 코민테른 의장 지노비예프 명의의 영국 공산당 지령 서한을 보도해 램지 맥도널드 노동당 정부가 타격을 입은 사건으로, 훗날 이 편지는 위조로 판단되었고 1999년 영국 외무부 보고서가 경위를 정리했다.
지노비예프 편지 사건, 1924년 영국 총선 직전 공개된 위조 코민테른 서한과 노동당 패배, 언제 일어났나요?
1924-09-15부터 1999-02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지노비예프 편지 사건, 1924년 영국 총선 직전 공개된 위조 코민테른 서한과 노동당 패배,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9-02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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