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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종결

우파 열차 참사, 가스관 누출 폭발로 열차 2대 덮쳐 575명 사망(1989)

1989-06-04 —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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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9년 6월 4일 새벽 소련 바시키르 자치공화국 우파 인근에서 노선 옆 액화탄화수소 파이프라인 누출로 생긴 가스 구름이 두 여객열차 교행 중 폭발해 공식 575명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다친, 소련·러시아 사상 최악의 철도 참사.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1981-01-19 ~ 1995

19811건
  1. 소련 각료회의, 1,852km 파이프라인 사업 승인

    1981년 1월 19일 소련 각료회의는 총연장 1,852km에 이르는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승인했다. 이 관로는 훗날 우파 인근 철도 구간 바로 옆을 지나는 시설이 된다. 당시 소련은 에너지 자원을 대규모로 수송하기 위해 장거리 관로망을 급속히 확충하던 시기였다. 이 사업은 이후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안전 기준을 둘러싼 문제를 낳았다. 참사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이 파이프라인의 계획과 건설 단계가 출발점으로 지목된다.

19851건
  1. 우회 구간 공사 중 굴착기가 관로에 1.7m 균열

    1985년 관로 우회(바이패스) 구간을 건설하던 중 굴착기가 파이프라인에 길이 약 1.7미터의 균열을 냈다. 이 손상은 그 자리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관로는 그대로 운영되었다. 균열 부위에서는 이후 서서히 가스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에서 밝혀졌다. 공사 중 생긴 손상을 검사하지 못한 채 방치한 점이 훗날 사고 책임을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되었다. 이 균열은 4년 가까이 방치된 뒤 참사의 직접적인 누출 지점이 되었다.

19895건
  1. 관로 압력 저하 후 오히려 공급량 늘려, 기관사들이 가스 냄새 신고했으나 묵살

    사고 약 세 시간 전 관로의 압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운영 인력은 원인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압력을 맞추기 위해 가스 공급량을 늘렸고, 이 조치는 누출을 더욱 악화시켰다. 철도 구간을 지나던 열차 기관사들은 선로 근처에서 가스 냄새가 난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관제 담당자들은 이 경고를 무시했고 열차 운행은 중단되지 않았다. 새어 나온 가스가 선로 주변 낮은 지대에 모여 거대한 가연성 구름을 이루는 동안 아무런 차단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2. 01:15, 두 여객열차 교행 순간 가스 구름 폭발

    1989년 6월 4일 오전 1시 15분 바시키르 자치공화국 이글린스키 지구 울루텔랴크 인근에서 두 여객열차가 교행하는 순간 선로 주변에 쌓인 가스 구름이 폭발했다. 현장은 우파에서 동쪽으로 약 75km 떨어진 지점이었다. 열차에는 약 1,300명의 승객이 타고 있었고 상당수가 흑해 휴양지를 오가던 가족과 어린이들이었다. 폭발의 위력은 TNT 250~300톤 수준에서 최대 약 10킬로톤 규모까지 추정이 엇갈릴 만큼 컸다. 화염은 객차를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숲 일대가 불탔다.

  3. 공식 사망 575명·부상 800여 명, 어린이 181명 포함

    공식 집계로 이 참사의 사망자는 575명, 부상자는 800명 이상이었으며 사망자 가운데 181명이 어린이였다. 비공식 추정에서는 사망자가 약 780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이 사고는 소련·러시아 철도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된다. 객차 약 40량이 폭발과 화재로 파괴되었다. 사고 당시 열차에는 약 1,300명이 타고 있었다.

  4. 조사 결과: 액화탄화수소 수송 관로의 안전 규정 위반

    사고 조사 결과 해당 파이프라인은 천연가스가 아니라 액화탄화수소를 수송하도록 전환되었으며 관경이 소련 안전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관로는 철도에서 불과 1km 안팎의 거리에 놓여 있었다. 누출된 액화가스는 기상 조건 때문에 흩어지지 않고 철도 구간 주변 저지대에 고여 가연성 구름을 이루었다. 1985년의 공사 중 균열, 압력 저하 무시, 공급량 증가, 기관사 경고 묵살이 겹쳐 인재(人災)로 규정되었다. 이 조사 결과는 이후 형사 기소의 근거가 되었다.

  5. 소련, 전국 애도의 날 선포

    참사 다음 날인 6월 5일 소련 정부는 전국 애도의 날을 선포했다. 조기가 게양되었고 오락 행사는 취소되었다. 희생자 가운데 어린이가 많았다는 점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사고 열차에는 흑해 휴양지를 오가던 가족과 어린이가 많이 타고 있었다. 이 참사는 소련 말기 산업 안전 체계에 대한 불신을 키운 사건 중 하나로 평가된다.

19951건
  1. 네프테프로보드몬타주 관계자 9명 기소, 6년에 걸친 재판

    사고 이후 관로 건설과 운영을 맡았던 네프테프로보드몬타주 등 관계자 9명이 형사 기소되었다. 재판은 6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재판은 시공 중 손상, 안전 규정 위반, 사고 직전 대응 등 조사에서 드러난 책임 문제를 다뤘다. 재판 종료 시점은 자료마다 달라 연도를 대략적으로 표기했다. 이 참사는 이후 러시아 철도와 파이프라인 인접 구간 안전 규정 논의에서 대표 사례로 언급된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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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우파 열차 참사, 가스관 누출 폭발로 열차 2대 덮쳐 575명 사망(1989), 어떤 사건인가요?
1989년 6월 4일 새벽 소련 바시키르 자치공화국 우파 인근에서 노선 옆 액화탄화수소 파이프라인 누출로 생긴 가스 구름이 두 여객열차 교행 중 폭발해 공식 575명이 사망하고 800여 명이 다친, 소련·러시아 사상 최악의 철도 참사.
우파 열차 참사, 가스관 누출 폭발로 열차 2대 덮쳐 575명 사망(1989), 언제 일어났나요?
1989-06-04부터 1995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우파 열차 참사, 가스관 누출 폭발로 열차 2대 덮쳐 575명 사망(1989),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95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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