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위키
국제·외교종결

하이난섬 EP-3 충돌 사건, 미 해군 정찰기·중국 전투기 공중충돌과 승무원 11일 억류(2001)

2001-04-01 — 2001-07

최종 갱신

이 문서는 실제 사건·사고를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편집 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 주세요.

1. 개요[편집]

2001년 4월 1일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 해군 EP-3E 정찰기와 중국 J-8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 조종사가 실종·사망하고,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미군 승무원 24명이 11일간 억류되며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외교 위기다.

2. 전개 과정[편집]

8개 기록 · 2001-04-01 ~ 2001-07

  1. 남중국해 상공에서 EP-3E와 중국 J-8 충돌

    2001년 4월 1일 하이난섬 남동쪽 약 70마일 공해 상공에서 미 해군 EP-3E 정찰기와 중국 해군 항공대 J-8 전투기가 충돌했다. 중국 전투기를 몰던 왕웨이 조종사는 기체가 두 동강 나면서 탈출했지만 수색에도 끝내 발견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었다. 미국은 정찰기가 국제 공역에서 정상 비행 중이었고 중국 전투기가 접근하다 충돌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 정찰기가 방향을 틀어 중국 전투기에 부딪혔다며 책임을 돌렸다. 양국의 엇갈린 설명은 이후 협상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2. EP-3 하이난섬 링수이 기지에 불시착, 승무원 24명 억류

    충돌로 기수 레이돔이 떨어져 나가고 프로펠러가 손상된 EP-3는 급강하 끝에 조종을 회복해 하이난섬 링수이 공군기지에 비상 착륙했다. 착륙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내려앉은 기체에서 승무원 24명이 내리자 중국군은 이들을 억류했다. 승무원들은 착륙 전후로 민감한 장비와 자료를 파기하려 했으나 완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기체와 장비를 조사했고 미국은 기체의 주권면제를 주장하며 즉각 반환을 요구했다. 이로써 사건은 단순 사고가 아닌 외교 위기로 번졌다.

  3. 미국 외교관, 억류된 승무원 면회

    사건 발생 사흘 뒤인 4월 4일 베이징 주재 미국 외교관들이 하이난에서 억류 중인 승무원들과 처음 만났다. 미국은 영사 접견 허용을 줄곧 요구해 왔으며 승무원들이 건강하고 대우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의 사과를 먼저 받아야 승무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공개적으로 사과할 수는 없다며 신속한 석방을 거듭 촉구했다. 정치적 수사와 협상이 병행되며 긴장이 이어졌다.

  4. 미국, '매우 유감' 서한 전달로 협상 타결

    4월 11일 미국은 주중 대사 조지프 프루어가 중국 외교부에 전달한 서한에서 왕웨이 조종사와 가족의 상실에 '매우 유감'을 표하고, 허가 없이 중국 영공에 착륙한 것에 대해서도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 서한은 두 번 '유감'을 언급했다 하여 '두 번의 유감 서한'으로 불렸다. 미국은 이것이 사과가 아니라 유감 표명이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은 사실상 사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서한 문구를 둘러싼 며칠간의 줄다리기는 양국이 체면을 지키려 애쓴 외교 협상의 전형이었다. 중국은 승무원을 인도적 차원에서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5. 승무원 24명, 억류 11일 만에 석방돼 괌으로 이동

    중국은 4월 12일 승무원 24명 전원을 석방해 중국이 요구한 민항기 편으로 하이난을 떠나게 했다. 미군기의 중국 입국은 허용되지 않았고, 승무원들은 괌을 거쳐 귀환길에 올랐다. 중국에서는 왕웨이를 영웅 순직자로 추모하는 분위기가 컸고, 사망한 조종사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승무원 귀환을 환영하는 분위기와 함께 서한 표현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억류 기간은 11일로 집계되었다.

  6. 워싱턴주 휘드비섬 해군기지서 승무원 귀향 환영

    귀환한 승무원들은 소속 부대가 있는 워싱턴주 휘드비섬 해군 기지에서 가족들의 환영을 받았다. 불시착을 지휘한 조종사 셰인 오스본 대위 등은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충돌이 중국 전투기의 접근 때문이었다고 증언했다. 미 해군은 이후 사고 경위를 조사했고 승무원들은 포상을 받았다. 정찰 비행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논쟁도 이 무렵 거세졌다. 미국은 국제 공역의 정찰 비행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7. 부시 행정부, 대만에 대규모 무기 판매 승인

    사건 직후인 4월 24일 부시 행정부는 대만에 대한 대규모 무기 판매 패키지를 승인했다. 여기에는 구축함, 잠수함, 대잠 초계기 등이 포함되어 1990년대 초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되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고 미중 관계의 긴장이 이어졌다. 이 결정은 중국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가 보다 강경한 노선을 택했음을 보여 주는 신호로 읽혔다. 하이난 사건의 여진이 대만 문제와 맞물려 확대된 것이다.

  8. 분해된 EP-3, 수송기로 미국에 반환

    중국은 협상을 거쳐 EP-3 기체를 분해한 상태로 미국에 돌려주기로 했다. 기체는 7월 초 대형 수송기에 실려 하이난에서 미국으로 옮겨졌다. 중국이 장비를 조사했을 가능성 때문에 미국은 기체의 보안 손상 여부를 우려했다. 사건은 양국이 군사적 충돌로 번지는 것은 피했으나 상호 불신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이후에도 남중국해 상공의 정찰과 요격 문제는 미중 갈등의 반복되는 쟁점이 되었다.

3. 같이 보기[편집]

271
알리익스프레스 프로모션 배너

자주 묻는 질문

하이난섬 EP-3 충돌 사건, 미 해군 정찰기·중국 전투기 공중충돌과 승무원 11일 억류(2001), 어떤 사건인가요?
2001년 4월 1일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 해군 EP-3E 정찰기와 중국 J-8 전투기가 충돌해 중국 조종사가 실종·사망하고, 하이난섬에 불시착한 미군 승무원 24명이 11일간 억류되며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외교 위기다.
하이난섬 EP-3 충돌 사건, 미 해군 정찰기·중국 전투기 공중충돌과 승무원 11일 억류(2001), 언제 일어났나요?
2001-04-01부터 2001-07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하이난섬 EP-3 충돌 사건, 미 해군 정찰기·중국 전투기 공중충돌과 승무원 11일 억류(2001),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01-07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개선 제안

이 문서에 대한 개선을 제안할 수 있어요. 제안은 관리자 검토 후 반영됩니다.

개선 제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