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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종결

코르푸 사건, 텔리니 장군 피살과 이탈리아의 그리스 섬 포격·점령(1923)

1923-08-27 — 192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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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23년 8월 그리스 영토에서 이탈리아 국경획정위원장 엔리코 텔리니 장군 일행이 피살되자 무솔리니가 최후통첩을 보낸 뒤 코르푸 섬을 포격·점령해 국제연맹과 대사회의가 개입한 외교 위기이며, 신생 국제연맹의 한계를 드러냈다.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1923-08-27 ~ 1923-09-27

  1. 텔리니 장군 일행, 그리스 영토 카카비아에서 피살

    1923년 8월 27일 알바니아 국경획정위원회를 이끌던 이탈리아 장군 엔리코 텔리니와 루이지 코르티 소령, 마리오 보나치니 중위, 통역 타나스 게지리, 운전사 레미지오 파르네티가 이오아니나 인근 카카비아 국경 지점에서 습격받아 살해되었다. 범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은 그리스 영토였고 위원회는 국제연맹 대사회의가 위임한 국경 확정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이탈리아는 그리스 당국의 책임을 즉각 거론했다. 이 암살은 이후 위기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2. 이탈리아, 그리스에 최후통첩 전달

    무솔리니 총리는 8월 28일 이탈리아 관련 지방 당국에 그리스로의 전신 통신을 차단하게 하는 등 강경 조치를 취했고, 29일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요구 사항은 공식 사과, 장례식 거행, 군 예우와 함대 경례, 책임자 사형, 5천만 리라의 배상금 지불, 이탈리아 무관 참여 수사 등이었다. 그리스에는 회신 시한으로 24시간만 주어졌다. 요구는 그리스의 주권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솔리니는 사건을 파시스트 정부의 대외적 위신을 세울 기회로 삼았다.

  3. 그리스, 일부만 수용하는 회신을 보냄

    그리스 정부는 8월 30일 최후통첩 요구 중 일부는 수정해 받아들이겠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주권과 명예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사형 요구와 이탈리아 무관 참여 수사 등 일부는 거부했다. 그리스는 피해자 유족에게 공정한 보상을 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이탈리아는 이 회신을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군사 행동이 임박했다.

  4. 이탈리아 함대, 코르푸 요새를 포격하고 군대 상륙

    8월 31일 이탈리아 해군 함대가 코르푸의 구요새와 신요새를 포격했다. 함대는 전함과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되었고 항공기도 동원되었다. 구요새 일대에는 아르메니아 난민과 고아들이 수용되어 있었고 민간인 16~20명이 사망, 3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수천 명의 이탈리아군이 상륙해 섬을 점령했다. 무방비 도시에 대한 포격은 국제 사회의 거센 비난을 불러왔다.

  5. 그리스, 국제연맹에 제소하고 이탈리아는 개입 거부

    그리스는 9월 1일 국제연맹에 사건을 제소했다. 연맹 주재 이탈리아 대표 안토니오 살란드라는 이 문제를 논의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 무솔리니는 연맹의 관여를 거부하고 대사회의가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간섭이 있으면 연맹 탈퇴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는 신생 국제연맹의 권위에 대한 첫 중대한 도전이 되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사태 확대를 막으려 했다.

  6. 국제연맹 이사회가 공개 회의 개최

    9월 5일 국제연맹 이사회는 무솔리니의 탈퇴 위협에도 불구하고 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탈리아 대표 살란드라가 이탈리아의 입장을 설명했고 그리스 대표 니콜라오스 폴리티스가 반박했다. 이사회는 이 문제의 관할권을 둘러싸고 의견이 갈렸다. 약소국은 연맹 규약 위반을 지적했으나 강대국은 이탈리아를 자극하기를 꺼렸다. 결국 문제는 대사회의로 넘겨지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7. 대사회의, 그리스에 해결 조건 제시

    9월 8일 대사회의는 해결안을 발표했다. 그리스 함대가 피레우스에서 이탈리아 함대에 21발 경례를 하고, 그리스 내각 참석 하에 장례 예배를 거행하며, 5천만 리라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고, 일본 시바야 중령 감독 하에 수사를 9월 27일까지 마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스는 같은 날 이를 수용했다. 이탈리아도 9월 9일 결정을 수용했지만 충분한 만족을 얻을 때까지 철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이탈리아에 유리한 해결이었다.

  8. 대사회의, 9월 27일까지 철수하라고 이탈리아에 통보

    9월 11일 그리스는 5천만 리라를 스위스 은행에 예치했고 같은 날 코르푸에는 이탈리아 우체국이 문을 열어 덧인쇄 우표를 발행했다. 14일 대사회의는 무솔리니에게 이탈리아가 늦어도 9월 27일까지 코르푸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점령이 무기한 지속되지 못하도록 시한을 정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우체국은 불과 15일간 운영되었다.

  9. 대사회의, 이탈리아에 5천만 리라 배상 결정

    9월 26일 대사회의는 그리스 당국이 범행 전후에 일정한 태만이 있었다고 판단해 이탈리아에 5천만 리라의 배상을 지급하도록 결정했다. 이탈리아는 점령 비용으로 하루 100만 리라를 추가 요구했으나 대사회의는 이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침략 행위에 대한 처벌 없이 피해국이 배상하는 결과였기에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철수는 확정되었다.

  10. 이탈리아군, 코르푸에서 철수

    1923년 9월 27일 이탈리아 국기가 내려지고 군대가 코르푸에서 철수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함대는 서로 경례를 교환했다. 코르푸 시민 4만 명이 귀환한 그리스 도지사를 환영했다. 9월 29일 무솔리니는 5천만 리라 중 1천만 리라를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난민 구호에 돌려주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은 국제연맹이 강대국의 군사행동 앞에서 한계를 보인 선례로 평가된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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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코르푸 사건, 텔리니 장군 피살과 이탈리아의 그리스 섬 포격·점령(1923), 어떤 사건인가요?
1923년 8월 그리스 영토에서 이탈리아 국경획정위원장 엔리코 텔리니 장군 일행이 피살되자 무솔리니가 최후통첩을 보낸 뒤 코르푸 섬을 포격·점령해 국제연맹과 대사회의가 개입한 외교 위기이며, 신생 국제연맹의 한계를 드러냈다.
코르푸 사건, 텔리니 장군 피살과 이탈리아의 그리스 섬 포격·점령(1923), 언제 일어났나요?
1923-08-27부터 1923-09-30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코르푸 사건, 텔리니 장군 피살과 이탈리아의 그리스 섬 포격·점령(1923),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1923-09-30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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