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피격 사건
2010-03-26 — 2010-09-13
최종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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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서해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폭발과 함께 두 동강 나 침몰하며 승조원 46명이 전사한 사건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 원인이라고 발표했고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에 큰 파장을 남겼다.
2. 전개 과정[편집]
7개 기록 · 2010-03-26 21:22 ~ 2010-09-13
백령도 인근서 천안함 폭발·침몰
2010년 3월 26일 밤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초계 임무 중이던 해군 초계함 천안함(PCC-772)이 큰 폭발과 함께 선체가 두 동강 나 침몰했다. 승조원 104명 가운데 58명이 구조됐으나 46명이 실종·전사했다. 사고 원인을 놓고 초기에는 좌초, 내부 폭발, 피격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며 혼란이 이어졌다. 군 당국은 즉각 실종자 수색과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전 이후 최악의 해군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서 전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함미 인양·시신 수습, 구조 과정 순직
사고 20일 만인 4월 15일 천안함 함미가 인양돼 실종 장병들의 시신이 다수 수습됐고, 이어 24일에는 함수가 인양됐다. 앞서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는 해군 특수전 요원 한주호 준위가 잠수 작업 중 순직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인양된 선체는 절단면이 위로 꺾여 올라간 형태로 강한 수중 폭발을 시사했다. 수습된 유해는 유가족에게 인계됐고 실종자 수색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인양된 선체는 이후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핵심 증거물이 됐다.
46용사 영결식·대전현충원 안장
4월 29일 해군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전사자 46명의 합동 영결식이 해군장으로 엄수됐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유가족 등 수천 명이 참석해 희생 장병들을 애도했다. 46용사는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운구돼 안장됐으며, 전원 1계급 특진과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차려져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국민적 애도 속에서 사고 원인 규명에 대한 요구도 함께 높아졌다.
민군 합동조사단 '북한 어뢰 피격' 발표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제 음향감응 어뢰의 강력한 수중 폭발(비접촉 폭발)로 선체가 절단돼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결정적 증거로는 5월 15일 사고 해역에서 수거한 어뢰 추진 동력장치가 제시됐으며, 여기에는 '1번'이라는 한글 표기가 적혀 있었다. 조사단은 이 어뢰가 북한 잠수정에서 발사됐다고 결론지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발표는 곧바로 정부의 대북 조치와 국제 대응으로 이어졌다.
정부, 5·24 대북 제재 조치 발표
이명박 정부는 5월 24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른바 5·24 조치를 발표했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 전면 중단,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불허, 대북 신규 투자 금지, 국민의 방북 제한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정부는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와 대규모 한미 연합 대잠 훈련 실시 방침을 밝혔다. 5·24 조치는 이후 오랫동안 남북 경제·교류의 기본 틀을 규정하는 강력한 제재로 작동했다. 남북관계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 채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7월 9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성명은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하고 한국에 대한 추가 공격이나 적대 행위 방지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공격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지는 못했다. 한국 정부는 안보리 차원의 대응을 이끌어냈다는 데 의미를 뒀지만, 북한 명시가 빠져 절반의 성과라는 평가도 나왔다. 국제사회의 대응은 이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국방부, 최종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발간
국방부는 9월 13일 천안함 피격 사건에 대한 최종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해 어뢰 피격 결론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보고서에는 폭발 유형 분석, 어뢰 추진체 감식, 지진파·공중음파 자료 등이 담겼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폭발 원인과 증거 해석을 둘러싼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논쟁이 이어졌다. 정부와 군은 국내외 전문가가 참여한 과학적 조사 결과라며 신뢰성을 강조했다. 천안함 사건은 이후에도 안보 태세 강화와 남북관계 논의의 중요한 기준점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자주 묻는 질문
- 천안함 피격 사건, 어떤 사건인가요?
-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서해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폭발과 함께 두 동강 나 침몰하며 승조원 46명이 전사한 사건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 원인이라고 발표했고 남북관계와 국제 정세에 큰 파장을 남겼다.
- 천안함 피격 사건, 언제 일어났나요?
- 2010-03-26부터 2010-09-13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 천안함 피격 사건,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 종결된 사건입니다. 2010-09-13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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