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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외교종결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와 파기 논란

2015-12-28 —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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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하기로 한 합의. 피해자 배제와 이면합의 논란 속에 화해·치유재단이 세워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검토를 거쳐 2019년 재단이 해산되며 사실상 파기 상태에 놓인 외교 사건.

2. 전개 과정[편집]

10개 기록 · 2015-12-28 ~ 2019-07

20152
  1.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 발표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서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정부 예산 10억 엔을 출연해 피해자 지원 재단을 설립하기로 했고, 아베 총리 명의의 사죄·반성을 표명했다. 양국은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했다. 발표 직후부터 합의 내용과 표현을 둘러싼 논란이 즉각 불거졌다. 피해자 당사자들과의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비판이 핵심이었다.

  2. '최종적·불가역적' 표현 논란

    합의문에 담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표현이 즉각 도마에 올랐다. 피해자들은 진상규명과 법적 책임 인정 없이 문제를 종결짓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한 일본이 소녀상 이전 문제를 거론한 점, 국제사회에서 상호 비난을 자제하기로 한 점이 굴욕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협상 과정의 밀실성과 피해자 배제를 문제 삼았다. 합의는 발표 직후부터 정당성 논쟁에 휩싸였다.

20163
  1. 피해자·지원단체 강력 반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나눔의집 등 피해자 지원단체는 합의 무효를 주장하며 규탄에 나섰다. 생존 피해자 할머니들은 '우리를 두고 우리 문제를 마음대로 합의했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수요집회에서는 합의 폐기 요구가 이어졌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곁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며 소녀상 지키기에 나섰다. 합의를 둘러싼 사회적 저항은 장기화됐다.

  2. 화해·치유재단 설립

    합의 이행 기구로 2016년 7월 화해·치유재단이 공식 출범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은 이 재단을 통해 생존 피해자와 사망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됐다. 그러나 피해자 다수와 지원단체는 재단 설립 자체에 반대하며 수령을 거부하는 이들도 나왔다. 재단은 출범 초기부터 피해자 동의 없이 세워졌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사장 사퇴와 운영 파행이 이어지며 재단의 정당성 논란이 커졌다.

  3. 부산 소녀상 설치와 한일 외교 마찰

    2016년 말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시민 모금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되면서 한일 외교 갈등이 격화됐다. 일본 정부는 합의 위반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2017년 초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강경 조치를 취했다. 한국 내에서는 소녀상 설치가 시민의 정당한 표현이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소녀상 문제는 2015 합의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양국 관계는 한동안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20172
  1. 문재인 정부, 합의 검토 TF 설치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7월 31일 외교부 장관 직속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를 설치했다. TF는 2015 합의의 협상 경위와 내용, 절차의 정당성을 전면 재검토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대선 공약이던 합의 재검토를 실행에 옮긴 조치였다. 일본 정부는 합의는 국가 간 약속이라며 이행을 거듭 요구했다. 재검토 착수로 합의의 운명은 다시 불확실해졌다.

  2. 검토 TF, 이면합의 존재 공개

    합의 검토 TF는 2017년 12월 27일 결과 보고서를 통해 공개되지 않은 이면합의가 존재했다고 밝혔다. 소녀상 관련 협조, 해외 소녀상 지원 자제, '성노예' 표현 자제 등 비공개 양해 사항이 있었다는 것이다. TF는 협상 과정에서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민주적 절차가 미흡했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 공개로 합의의 신뢰성은 크게 흔들렸다. 재협상·파기 여부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됐다.

20182
  1. 정부 후속 조치 발표

    2018년 1월 한국 정부는 2015 합의로는 위안부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대신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그 처리 방안을 일본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이는 합의를 공식 파기하지도, 이행하지도 않는 절충적 조치였다. 일본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재단의 존폐 문제가 남은 최대 쟁점이 됐다.

  2. 여성가족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공식 발표

    2018년 11월 21일 여성가족부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겠다고 공식 발표하고 관련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 중 피해자·유족에게 지급되고 남은 약 57억여 원의 처리 방안은 피해자와 관련 단체 의견을 수렴해 마련하기로 했다. 재단은 설립 당시부터 피해자 동의 없이 세워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발표로 2015 합의는 사실상 파기 수순에 접어들었다.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20191
  1. 재단 최종 해산과 합의의 사실상 무력화

    2019년 7월 화해·치유재단은 등기 말소 등 절차를 거쳐 최종 해산됐다. 이로써 2015 합의의 핵심 이행 기구가 사라지며 합의는 실질적으로 무력화됐다. 다만 한국 정부는 합의를 공식 폐기하거나 재협상을 선언하지는 않아 외교적으로 애매한 상태가 이어졌다. 재단 해산은 이후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맞물려 한일 관계 악화의 한 축이 됐다.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양국 사이의 미해결 현안으로 남았다.

3.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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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와 파기 논란, 어떤 사건인가요?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종결하기로 한 합의. 피해자 배제와 이면합의 논란 속에 화해·치유재단이 세워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재검토를 거쳐 2019년 재단이 해산되며 사실상 파기 상태에 놓인 외교 사건.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와 파기 논란, 언제 일어났나요?
2015-12-28부터 2019-07까지 이어진 사건입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와 파기 논란,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종결된 사건입니다. 2019-07에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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